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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으니 Jun 11. 2020

내 인생의 기념비적인 날

“미안한데, 나 교대역까지 데려다줄 수 있어? 택시 부르려고 했는데 늦을 거 같아.”


곤히 자고 있던 남편은 잠에서 깨자마자 눈도 채 뜨지 못한 채 모자를 뒤집어쓰고 나갈 채비를 한다. 나는 첫째 아이에게 자고 있는 둘째를 부탁하며 부랴부랴 짐을 챙겨 집을 나선다. 가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핀잔을 좀 먹었지만 그 정도는 먹을만하다. 미리 준비한다고 했는데 출근 시간이라 막힐 거라는 생각을 못 한 내 잘못이었다.


교대역에 도착하여 남편에게 정신없이 인사하고 차에서 짐가방을 챙겨 내려 정차해 있던 버스를 찾아 후다닥 올라탔다. 코로나가 터지던 초반이라 차에 올라타며 체온을 재고 가는 동안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한숨 돌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나는 영덕을 향해 출발했다.


2020년 2월 10일 오전 6시 30분의 일이다.


2020년 나는 40세가 되었다. 사회적 나이로는 작년에 이미 40이 되었지만, 빠른 생일자의 덕을 좀 보아 실제 나이로는 올해가 40세이다. 40세 기념으로 회사에서 명상 교육을 3박 4일로 보내주었다. 올해부터 생긴 교육이라고 한다. 여러 회수 중 첫 회를 선택해서 교육에 참여했고, 코로나 사태가 더욱 길어지며 그 교육은 내가 교육을 받은 후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다. 

만약 올해 교육이 생기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1회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빠른 생일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운명 같은 일이다.


교육을 받기 전 나는 명상에 대해 호기심이 있었다. 그래서 그 교육을 참여할 때 열린 마음으로 참여했고, 모든 교육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함께 같이 갔던 동료 2명은 여전히 이전과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반면, 나는 완전 다른 일상을 살고 있다.


명상을 통해 배운 가장 큰 깨달음은 현재를 살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순간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바쁘게 살고 있다고 뿌듯해하던 일들이 돌이켜 보니 전혀 뿌듯한 순간이 아니었다. A 일을 하면서도 B 일을 생각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휴대폰의 정보를 들여다보고 있고, 아이와 대화하거나 놀이를 하다가도 머릿속엔 할 일들이 가득했다. 사람은 실제로 멀티태스킹을 할 수 없다고 한다. 하나의 일을 하다가 다른 일로 빠르게 모드를 체인지 하는 것일 뿐이다. 즉,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로 이 일 저 일을 처리하게 된다는 거다. 그런데 난 지금껏 내가 멀티태스킹을 잘 하는 매우 효율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다.


더욱이 나는 미래를 위해 우리 가족의 현재를 희생하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남편에게는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라며 현재의 불안함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했고, 아이에게는 너의 미래를 위해 현재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강요했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 대부분은 공부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또한,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평일은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하루씩 당번을 정해서 한 명이 일찍 퇴근하고 나머지 한 명은 일을 하거나 약속을 잡는다. 주말은 첫째 아이와 내가 대부분 집에 없었다. 아이 수업이 있거나 체험학습 등을 위해 늘 나가 있었다. 주말 밖에 시간이 없는 직장맘으로써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나도 모르는 사이 메말라가고 있었다.


다시 명상 교육으로 돌아와서, 어느 날 저녁 자율 선택으로 별빛 명상 시간이 계획되어 있었다. 자율적 선택이 가능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각자 숙소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나는 명상에 참여했다.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누워 담요를 두 개씩 덮고 별빛 명상을 준비했다. 아직 2월 초 날씨라 오래 누워 있으니 쌀쌀함이 느껴졌다. 예정된 시간 8시 15분이 되어 연수원 건물 불빛이 모두 소등되었다. 딱 15분이었다. 환한 빛이 밝혀져 있을 때 보이지 않았던 별들이 한 번에 소등을 하고 나니 하나둘씩 반짝이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처음에 보이던 반짝이는 별들을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그 주변의 덜 빛나던 별들도 보이는 것이다.


그때 나는 문득 내 아이가 생각났다. ‘그래, 모든 인생은 각자의 밝기가 있고, 각자의 장단점이 다른데. 나는 우리 딸의 가려져 있던 장점을 보려 하지 않았구나. 이렇게 자세히 보면 우리 아이만의 장점도 내가 볼 수 있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가족의 모습이 떠올라서 가슴이 벅찼다.  그날 가족에게 편지도 쓰고 다짐도 적어두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남편과 딸에게 그 다짐의 편지를 건네며 앞에서 선언했다. 남편에게는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을 그만 두 자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그동안 힘든 점을 쏟아내며 행복해했다. 아이에게는 그동안 매일 해야 하던 숙제는 모두 그만두고, 책 읽고 이야기 나누고 꼭 필요한 학습만 하기로 약속했다.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 둘은 나를 보며 대체 무슨 교육을 다녀온 거냐며 궁금해했다.


누군가에겐 별로 다르지 않던 흔한 교육일 수 있었지만, 나의 인생에서는 삶의 가치관과 나아갈 방향을 수정할 수 있었던 소중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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