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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은희 Nov 17. 2021

제주 갱이 동백이

10.  제주의 여름

엄마가 서울에서 내려왔던 날이 떠올라요. 전에 엄마, 아빠는 또 자동차를 쫓아갈까 봐,  나를 뒤뜰에 묶어 놓고 나갔어요. 그런데 비가 오기 시작하지 뭐예요. 아이 참, 뒤뜰에는 비를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았거든요. 나는 이리저리 움직여서 비를 피하고 있었는데, 낯익은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어요. 맞아요. 엄마였어요. 엄마가 온 거였어요.

 엄마는 차도 아무렇게 세우고, 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진표야, 진표야~"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울음이 터져 나왔어요.

 "엄마, 엄마~날 버린 게 아니었어요?  보고 싶었어요.  저 여기 있어요."

 엄마는 뛰어와서는 내 목줄을 풀어주고 끌어안아주었어요. 엄마의 냄새가 아찔했어요...

 그렇게 내가 싫어하는 목욕을 시켜 놓고 나를 보던 엄마는 혼잣말을 했어요.

  "야휴, 얘가 왜 이렇게 못생겨졌지?"

엄마는 참, 개를 앞에 놓고 그런 말을 하다니... 너무 예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못 들은 척했어요. 엄마 가방에서 서울에서 사 온 간식 냄새가 솔솔 났기 때문이에요... 그날 밤 엄마는 내 털을 만지면서 내 귀에 속삭여주었어요.

 "진표야, 다시는 널 놓고 서울에 가지 않을게. 이제는 모든 너랑 함께 할 거야."

 나는 엄마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졸음이 쏟아졌거든요.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난 날이었잖아요...

  그런데 모든 나랑 하겠다던 엄마의 말은 거짓말이었지 뭐예요? 갑자기 엄마는 나를 놔두고 거의 매일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몇 시간 있다가 돌아오는 엄마는 너무 힘들어 보였어요. 엄마는 지쳐서 소파에 누워서 한참을 안 일어났어요. 나는 꼬리도 쳐 보고, 내가 그렇게 아끼는 공도 갖다가 엄마에게 주었지만, 엄마는 미소만 지은 채 가만히 누워만 있었어요. 그전부터도 무시무시한 제주의 여름을 처음 겪는 엄마는 많이 힘들어했었는데... 또 엄마가 뭔가를 벌인 것 같았어요....

 나중에 큰 이모랑 얘기하는 걸 엿들었는데, 엄마는  제주에 놀러 오는 사람들이 자는 집에서 청소를 시작했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다시 고치느라 돈이 많이 들어가서, 엄마는 빚을 지었다지 뭐예요.  빚을 갚으려고 한 번도 안 해 본일을 하기 시작했던 거예요. 난 지쳐 있는 엄마가 걱정이 되었어요. 엄마는 제주의 끈적끈적한 여름을 잘 견디게 하려면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는 연기를 하기로 했어요. 뭐든 잘 먹어서 엄마도 나를 따라 잘 먹게 하기로 했어요. 어느 날 수박을 사 온 엄마는 내게 주었고, 난 아주 잘 먹는 척했어요. 엄마는 내가 수박을 잘 먹자, 신기해하면서 나 한 개 주고, 엄마 한 개 먹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내가 수박을 먹냐고요? 아휴 말도 하지 마세요. '수박'이라면 아주 지긋지긋해요...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다음 날 돌하르방 머리만 한 수박을 또 사 왔지 뭐예요? 이제는 더 이상 수박을 입에도 대기 싫어졌는데... 난 어떡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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