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기.

무기력에 빠진 백수가 위험한 이유

by 글쓰는 회사원H

비수기.


나는 백수인 지금을 ‘비수기’라고 부른다.


이상하게도, 회사를 다닐 때보다 오히려 집에서 빈둥거릴 때 몸이 더 아픈 느낌이다. 시간적 여유가 많아질수록 걱정도 함께 늘어났다.

18년 넘게 다닌 첫 직장을 퇴사하고 백수가 되었을 때, 나름 건강한 생활을 계획했다. 적당한 햇볕을 쬐고, 운동을 하며, 직접 요리해서 먹는 등 몸을 챙기려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건강 문제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의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졌다. 그리고 다리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자반증이 나타났다. 자반증은 면역력 저하와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는데,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마음은 편히 쉬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역류성 식도염이 말썽이었다. 직장에 다닐 때는 퇴근이 늦어져 저녁을 먹는 시간이 항상 늦었다. 남들이 야식을 먹는 시간에야 겨우 저녁을 먹었고, 목이 자주 아팠지만 단순한 감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퇴사 후에도 목의 이물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찾아보니 역류성 식도염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였다. 병원을 다녀오고 식습관을 바꾸었지만, 여전히 목에는 염증이 남아 있었다. 이제는 웬만하면 야식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퇴사하고 나니, 직장 생활 중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사계절 내내 선풍기를 사용하는 애호가로, 머리를 말릴 때나 답답할 때마다 써큘레이터를 켜 두곤 했다. 하지만 매일 보면서도 막막해서 방치했던 선풍기의 먼지는 늘 신경 쓰이던 부분이었다.

퇴사 후, 드디어 마음을 먹고 청소를 시작했다. 평소에는 면봉으로 겉만 닦고 끝냈지만, 이번에는 나사를 하나씩 풀고 날개까지 분리해 꼼꼼하게 먼지를 제거했다.퇴사 후에야 비로소 이런 작은 부분들까지 신경 쓸 여유가 생긴 걸 보니, 백수 생활도 나름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또 하나 신경 쓰였던 건 베란다 결로로 생긴 곰팡이였다. 겨울이라 환기를 자주 하지 않았더니 벽이 점점 검게 변해갔다. 한동안 귀찮아서 미뤘지만, 결국 제거 작업을 시작했다. 여러 제품 리뷰를 찾아보고 효과 좋은 제거제를 구매해 몇 번의 작업 끝에 새하얀 벽을 되찾았다. 이제는 아침마다 베란다 문을 열고 환기하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백수가 되면 쉬면서 몸도 마음도 편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하나둘 드러났다. 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생활을 유지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노력이 필요했다. 나만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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