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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회사원H Sep 18. 2021

10. 옹알이도 못 한 서비스강사 자격증.

공감과 소통강사를 꿈꾸었던 인생.

구글 클라우드에 보관된 과거 사진 중에서 6년 전에 딴 서비스강사 자격증을 보았다.





입사 후 처음 맡은 업무는 가맹점 거래 정산 업무였다.

좋은 사수를 만나 시작하게 된 일이었지만, 그 일에 투입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사업을 접게 되면서, 사수는 얼마 후 다른 삶을 선택해 퇴사하고 내가 다시 발령받은 곳은 고객지원실이었다.


고객의 전화만 받는 곳과는 달리 각자의 크고 작은 운영 업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추가적으로 고객의 전화를 받는 곳이었다.


텃새도 정말, 강한 곳이어서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 상대방 대리점 관리자분내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 신입사원이세요.?"
-네.
"괜찮아요? 거기 회사 여직원들  다른 곳보다 기가 너무 세서 무섭던데."
-아...
"파이팅해요. 오래 봤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그 짧고, 굵은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단단한 사람들.


내가 들어갔을 때 그 팀의 언니들은 이미 3이상을 서로 가까이 함께하고 있었다.


불친절함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 중 그렇지 않아 보이는  사람은 겨우 한둘 정도가 눈에 띄었다.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많고, 퉁명스러운 사람들.


그 속에 막내로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마 그들은 내가 그런 그들 속에서 얼마나 버텨낼지를 속으로 세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달 아니면 일주일?


A4 종이에 대충 정리되지 않은 인수인계를 받고, 새로운 일들이 생기면 다이어리에 적고 또 적었다.


눈치를 살피고 상대방의 짜증을 받아가며, 하나하나 내 것으로 만들어갔다.


대학시절 방학 때마다 관공서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한터라 특별히 전화를 받는 거부감은 없었다.


대충 적당히 작성해주는 서류, 인감 날인 및 규격에 맞지 않는 서류들을 모두 골라내어 반송과 공지를 올리고, 담당자들에게 확인시켜주었다.


선처리를 요청하여 처리한 후엔 서류를 주지 않아 다시 받기가 너무나 힘들어 선처리를 거절하느라 다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 정말 많이 들은 이야기는 융통성이 없다.

너무 정석이라 피곤하고 답답하다.


심지어 대리점 사장님 중에는 금감원에 가지  그 자리에 왜 있느냐고 비아냥 거리기도 하셨다.


문제가 생기면 본인들이 책임을 진다고들 하지만, 정작 일이 터지고 나면 어느 하나 책임지는 이는 없었다.


사고는 어디에서 어떻게 생길지 모른다.


입사 후 두 달도  되었을  직접 그런 일을 당했다.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에 갑자기 들이닥친 업체 사장에게 자리를 쓸리며, 심한 욕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저지하며 말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일도 사람도 직접 경험을 하며 겪어가며 믿는 편이고, 리스크가 없이 일처리를 하려 노력한다.


그래서 답답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나 자신을 스스로 피곤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6년 전 그해 번아웃이 심하게 왔었다.


새벽 1시까지 일을 하면서 혼자 문지기를 하며 퇴근할 때면 왜 이러고 살까 싶었다.


쉬는 날 회사에 출근하여 자리를 정리해 보았다.


2004년도 입사 때부터 2014년도 다이어리와 달력을 쓰레기통에 폐기하다가 역사 마냥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는 다이어리를 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빽빽하게 적힌 처리했던 민원들.

-출금 이체 파일 돌려야 되는 날짜.

-정산을 마감해야 되는 날짜.

-미접수된 서류들에 대한 기재.


심지어는 업무사이트 뉴얼을 연도별, 버젼별로 보관하고 있었다.

(필요하다며 찾는 이에게 요긴하게 사용하긴 했지만.)


무슨 애착으로 서랍 안에 이 많은 것들을 고이 모셔뒀을까.


생각이 많았다.

계속 이일을 하는 것이 맞을까.

뭘 해 먹고살아야 하지?

목소리를 내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이것저것 검색하던 중 서비스강사 자격증 강의가 눈에 들어왔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고객응대를 하면서 느낀 건 조금 더 친절하게 고객과 소통하고 싶다였다.


뭐. 배우고 나면 남들 앞에서 말도 잘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사항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말은 늘지 않았다.


주말을 모두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원에서 보내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


학원생들 모두 직장인이었는데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재미있게 수업을 들었다.


자격증 테스트 과정으로 학원생 앞에서 강의를 직접 진행하는 것을 영상으로 찍어 주었다.


어찌나 달달달 떨었는지 내 강의 영상은 아직도 끝까지 보질 못했다.


새로운 직업으로 시작해보고 싶던 생각은 생각으로만 끝났고, 자격증은 한 번도 활용하지 못한 장롱 자격증으로만 남았지만, 가끔 그때를 회상해본다.


나 서비스 강사 자격증 있는 여자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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