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가 남긴 것들
한 달이 하루처럼 짧았다.
방 구석구석에 흩어놓았던 내 흔적들을 지우듯, 다시 짐을 가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꾹 눌러 닫은 가방이 행여나 열릴까 봐 잠금 벨트까지 한 번 더 채웠다.
'이제 다 준비된 건가?'
한 달 전 이 숙소에 도착했을 때 안도했던 마음은, 이제 집으로 되돌아가는 긴 비행시간에 대한 걱정으로 벌써부터 무거워졌다. 멀고 먼 도시의 새로움에 빠져드는 건 좋아하지만, 장거리 비행은 여전히 곤혹스럽다. 몸이 기억하는 피로와 불편함이 벌써부터 무겁게 짓눌러온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가는 일.
몸이 힘든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비엔나의 창밖을 바라봤다.
쉴러가세 32번지. 노란 파스텔톤 건물. 진한 브라운 컬러의 오래된 나무문. 한 달 동안 매일 드나들던 그 문이 내일이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된다. 이상하다. 내 집도 아니었는데 떠나려니 아쉽다.
'어느새 익숙해지고 정이 들었나?'
바바라가 정갈하게 준비해 둔 것들, 매일 사용했던 식탁과 의자, 부드러운 촉감의 소파와 담요. 낯설던 모든 것들이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익숙해졌다. 아침마다 토마토와 야채를 썰던 소리, 상큼한 과일 주스의 미지근한 온도, 창밖으로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던 모습까지.
'한 달이면 뭔가 달라질 거야.'
오래 머무는 여행인 만큼 극적인 깨달음이나 드라마틱한 전환 같은 것이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없기에 좀 더 느슨해진 하루를 보내는 비슷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정말 달라진 게 없는 걸까? 정말 그럴까?'
오래 전의 나는 해야 할 것들과 수치화된 성과를 만들기 위해 주변을 살펴보지 못하고 빠르게 달리기에 급급했다. 수면 시간이 줄고 스트레스가 심할 땐 이유 없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삶의 한가운데를 지난 지금, 그렇게 계속 폭주했다가는 내가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더 이상 시간에 쫓기는 삶을 용납하기 싫었다. 삶의 속도를 재정비할 때라는 신호였다.
'7월 한 달, 나를 위한 쉼으로.'
비엔나에서는 매일 몇 시간씩 걸었다. 계획 없이, 그날의 기분대로.
어느 날 오후, 부르크가르텐을 지나다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그저 잠깐 쉬려던 거였다. 그런데 그 '잠깐'이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트램의 경적, 잔디밭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것들이 내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비어 있는 시간이 오히려 마음을 채웠다.
어느 날 오후엔 알베르티나 미술관에 갔다. 뒤러의 초록 토끼를 보러 간 길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그림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폴 델보의 '랜턴이 있는 풍경'. 가로등 불빛 아래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홀로 서 있고, 저 멀리 시신을 운반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삶과 죽음이 나란히 선 고요한 풍경이었다.
'죽음을 이렇게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두렵거나 음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요했다. 죽음은 언젠가 올 것이고, 그것을 인정하면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해진다고 그림이 말하고 있었다. 다른 전시실에 걸린 호들러의 '감정'에서는 네 명의 여인들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사람 안에도 수많은 감정이 공존한다.
나는 너무 바빠서 내 감정이 어땠는지 몰랐다. 슬픈지, 외로운지, 지친 건지조차 구분하지 못한 채 그저 '괜찮다'고만 답했다. 늘 내 감정은 후순위였다. 그런데 이 그림들 앞에서 내 안의 감정이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술관을 나오는 길에 마음이 일렁였다.
'좋은 작품은 삶을 뒤돌아보게 한다.'
가구박물관과 MAK 미술관. 그곳에서 요제프 프랑크의 패브릭 디자인을 만났다. 형형색색의 꽃과 나뭇잎이 자유롭게 흩어진 패턴엔 규칙도 없고 대칭도 아니었다. 그런데 묘하게 조화로웠다. 가까이 다가가 디테일을 들여다봤다. 어떤 꽃잎은 명확하지 않았고, 어떤 줄기는 삐뚤어져 있었다. 완벽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살아 있는 느낌을 만들어냈다.
'이게 내가 그리고 싶었던 거였어.'
인테리어디자인을 가르치면서 늘 학생들에게 말했다. “디자인에 완벽은 없지만, 좋은 디자인은 시간을 넘어선다.” 그런데 정장 나에게는 완벽을 요구했다.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던 시간들. 언젠가부터 '잘 그려야 한다'는 생각에 손이 멈췄었다. 선이 삐뚤어지면 지우개로 지웠고, 색이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시작했다. 그러다 아예 그만뒀다.
그런데 요제프 프랑크의 디자인을 보니 오랫동안 미루고 멈췄던 것들이 다시 떠올랐다. 형태가 조금 삐뚤어져도, 색이 삐져나가도, 그게 나만의 방식이면 되는 거였다. 완벽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 그의 패브릭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니 새롭게 시작할 용기가 생겼다. 집에 돌아가면 색연필을 다시 꺼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잘 그리지 못해도 괜찮다. 그저 그리는 시간 자체가 나를 채워줄 테니까.
슈테판 성당에서 도시를 내려다봤을 때, 벨베데레에서 클림트와 실레를 만났을 때, 훈데르트바서의 쿤스트하우스에서 자유로운 곡선 앞에 섰을 때. 그때는 몰랐다. 그 순간들이 모여 내 삶의 속도를 바꿀 거라는 걸.
'예전과 다른 나의 속도를 수용하고,
나를 소진하지 않도록 여백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비엔나에 머물며 지나간 나의 여름.
그 한 달은 나에게 준 가장 긴 쉼표였다.
잠시 멈춰 설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이제는 그 쉼표 뒤의 문장을 쓸 차례에 있다.
비엔나에서 돌아온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삶에도 관성이 있는지 다시 속도가 빨라졌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답장을 보내고, 다음 계획을 세웠다. 바쁘게 움직이는 것에 또다시 익숙해졌다.
'좀 더 꼼꼼하게, 더 잘하고 싶은데...'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있어도 금방 피곤해졌다. 강의 준비를 하다가도, 글을 쓰다가도 자꾸 멍해졌다. 집중력은 예전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니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 자신이 무너지는 것처럼 그 간극 앞에서 한동안 좌절했다. 이제 더 이상 예전의 속도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비엔나 여행을 돌아보면 삶의 전환점이 될 정도로 극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경직되었던 나의 생각에 균열을 내고 있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발터 쾨니히 서점에서 봤던 문장이 떠올랐다.
"Small movements, still matter."
작은 움직임도 여전히 중요하다.
빠르게 달릴 수 없다면, 천천히 걸으면 된다.
많이 할 수 없다면, 적게 하되 의미 있게 하면 된다.
완벽할 수 없다면, 불완전해도 괜찮다고 수용하면 되는 거였다.
몸이 속도를 늦추라고 말할 때, 그건 실패가 아니라 재조율의 시간이었다.
작은 걸음이 모여 나만의 악보를 만든다.
어떤 곡이 쓰일지 모르지만, 그 과정을 즐긴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음악의 악장에 빠르고 경쾌한 알레그로가 있고, 느리고 서정적인 안단테가 있다.
지금까지 내 삶은 알레그로였다. 쉬지 않고 달렸고 멈추는 것을 두려워했다. 의무와 책임감으로 하루를 채웠고, 좋아하는 것들은 늘 뒤로 미뤘다. "나중에", "언젠가"라고 말하며 오늘을 유예했다.
이제는 다른 악장을 연주하고 싶다.
느린 악장. 하지만 더 깊은 울림을 가진 악장.
바쁘게 많은 일을 해내는 하루보다는
의미 있는 것들로 충만하게 채운 하루를 살고 싶다.
좋아하는 것들을 곁에 가까이 두면서.
책을 읽고 싶다. 한 문장을 오래 곱씹으며.
글을 쓰고 싶다. 짧게라도 내 안의 목소리를 매일 기록하며.
그림을 그리고 싶다. 색연필을 들고 생동감 있는 색채를 마음껏 표현하며.
건강을 챙기고 싶다. 쉬어야 할 때 쉬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새로운 악장은 느릴지 몰라도 더 깊은 울림을 지니길 바란다.
빠르게 지나가지 않아 마음에 더 오래 남기를.
빠르게 달리느냐, 천천히 걷느냐. 맞고 틀린 것은 없다. 다만 자신에게 맞는 속도를 찾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내 몸의 한계를, 삶의 속도를, 그리고 새로운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평온해질 수 있다.
이제 다시 움직일 시간이다.
이번엔 내가 선택한 속도로, 서두르지 않고.
“당신의 삶은 지금 어떤 악장을 연주하고 있나요?
혹시 쉼표 없이 달려온 건 아닌가요?
이 책을 덮은 후, 당신만의 쉼표를 찾아보세요.
굳이 비엔나가 아니어도 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한 정거장 일찍 내려 걸어도,
점심시간 회사 옥상에서 하늘을 올려다봐도,
저녁에 침대에 누워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도 좋습니다.
멈춰 서는 용기,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믿음.
그것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럼, 새로운 악장으로 넘어가 볼까요?”
2025년 12월, 전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