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을 거부하고, 삶 전체로 자신을 말하다

훈데르트바서의 쿤스트하우스, 예술가의 집

by 최은희

비엔나 한 달 살이, 이제 열흘 정도 남았다.


스페인에 가우디가 있다면 오스트리아에는 훈데르트바서가 있다.

나는 그의 건축물을 직접 보고 싶어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로 향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골목을 돌아서는 순간, 눈앞의 풍경이 달라졌다.


'이게 진짜 집이야?'


마치 동화책이 펼쳐진 것 같았다.

빨강, 노랑, 파랑. 블랙 앤 화이트 타일이 벽면을 수놓고, 1층 기둥은 도자기를 쌓아 올린 듯 울퉁불퉁했다. 건물 테라스에서는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건물이 나무를 품고 있는 건지, 나무가 건물을 키우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1985년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사는 곳.

20세기 모더니즘이 직선과 효율을 외치던 시절, 네모반듯한 건물의 고정관념을 깨고 자유분방한 색채와 곡선으로 지어진 집. 타일 조각들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건물 옆 분수대 주변으로 돌바닥은 작은 언덕처럼 오르락내리락했다. 아이들은 그 위를 뛰어다녔고, 관광객들은 그곳에 앉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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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 하우스, 비엔나 / 나무도 세입자가 된 건물


나도 그 돌 위에 앉아 분수대를 그렸다. 그리다가 물이 흘러나오는 타일 조각을 발견했는데, 마치 웃는 얼굴처럼 보였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유머를 곳곳에 숨겨둔 훈데르트바서. 규칙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묘하게 조화로운 이곳.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 불규칙함 속에 한 사람의 삶 전체가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전쟁이 남긴 것들


1928년, 비엔나에서 태어난 프리드리히 슈토바서.


유대인이었던 그는 나치 치하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체성을 숨겨야 했다. 어머니는 그를 지키기 위해 위장 결혼까지 했고, 그는 히틀러 유겐트에 들어가 위장 생활을 했다. 열다섯 살 소년이 자기 존재를 부정하며 살아야 했던 시간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바꿨다.

독일어 슈토바서(Stowasser, 백 개의 물)를 체코어로 번역한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로.


'왜 전혀 다른 이름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뿌리는 남기되, 고통의 시간을 자기 방식으로 기억하고 싶었던 걸까?'


그 경험은 그의 예술관을 만들었다. 전쟁은 모든 것을 똑같이 만들려 했다. 같은 제복, 같은 구호, 같은 사고방식. 그 속에서 개인은 사라졌다. 그래서 그는 평생 획일화를 거부했다. 직선을, 규칙을, 똑같음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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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스트하우스 / 직선을 거부한 건축가의 동화 같은 건물


쿤스트하우스, 예술가의 집


도보로 10분 거리.

쿤스트하우스로 가는 길에 도나우강이 구불구불 흘렀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그의 말처럼.


마침내 도착한 쿤스트하우스.

그 앞에 섰을 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블랙 앤 화이트 체스판을 외관에 걸쳐 놓은 듯한 동화 같은 건물. 주변의 정돈된 건물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였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보라. 알록달록한 타일이 외벽 곳곳에 박혀 있었다. 구와 원기둥으로 만든 독특한 기둥.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창문. 모든 선들은 구불구불했다.


'완전한 직선이 거의 없네.'


발코니와 지붕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건물을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보이게 했다. 건축가가 직접 설계하고 지은 건물은 이제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되어 있었다. 좀 전에 봤던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보다 더 자유로운 비정형적인 형태.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발밑이 달랐다. 바닥 타일이 물결치듯 굽이치는 형태로 평평하지 않았다. 걸을 때마다 발바닥에 미세한 요철이 느껴졌고, 몸이 리듬감을 느끼며 걸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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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스트하우스 / 자유곡선이 물결치는 전시장 벽과 바닥


나는 늘 '수평 수직'과 선의 '정렬'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규칙성 있는 곡면을 선호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달랐다.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벽면이 구부러져서 불편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 몸이 적응해 갔다. 마치 숲길을 걷는 것 같았다. 벽면을 만져보았다. 매끄러운 타일, 거친 타일. 손끝마다 다른 질감. 균일함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산만하지 않았다.


'전시하기 편한 하얀 벽, 평평한 바닥, 직선 복도.

그런 효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는 자기 철학을 꺾지 않았다. 미술관도 하나의 예술작품이어야 한다고 믿었으니까.



끝까지 자기답게


전시장 벽면에 그의 연대기가 적혀 있었다. 1928 ~ 2000.
마지막 문장 앞에서 발이 멈췄다.


"2000년 2월 19일, 뉴질랜드로 행하는 배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그의 유언대로 나무 아래 묻힘."


죽는 순간까지도 여행 중이었던 훈데르트바서.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계속 흘러가는 물처럼 그렇게 살다가 간 거다. 그는 뉴질랜드 북섬 카우리나무 아래 묻혔다. 입고 있던 옷 그대로, 관도 없이, 나무 아래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그의 철학대로.


'이 사람은 정말 단 한순간도 자기 철학을 배신하지 않았구나.'


전시장에 서서 한참 동안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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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의 훈데르트바서 연대기, 1928~2000,


자기가 믿는 대로 살았던 훈데르트바서. 불편하더라도, 비용이 더 들더라도, 사람들이 이상하게 봐도.


하지만 말과 행동의 일치가 어디 쉬운가.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만 한다. 자연을 위해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고, 보편적인 유행보다는 차별화된 개성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실제로는 편한 것, 익숙한 것, 안전한 것을 따라간다.


'그럼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말과 삶이 일치하는 삶.

그는 자기 철학을 그림으로, 건축으로, 삶으로 증명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전시실을 걷다


전시실을 천천히 걸었다.

세계를 여행하며 수집한 이미지들을 어린아이 같은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컬러풀한 색채와 자연에서 가져온 구불구불한 선들로. 건축가이자 예술가였던 그는 자신이 본 세계를 그렇게 화폭에 담았다.


벽면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Spiral is symbol of life and death."
나선은 삶과 죽음의 상징이다.


그가 평생 탐구했던 세계는 자연이었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믿음. 그 믿음을 건축으로, 회화로, 삶으로 증명한 사람.


한 작품 앞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The beard is the grass of the bald-headed man."
콧수염은 대머리 남자의 잔디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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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나선 / 콧수염은 대머리 남자의 잔디(1961), 훈데르트바서


콧수염 난 대머리 아저씨를 위에서 내려다본 그림이었다. 제목을 보지 않았다면 그저 추상화려니 했을 텐데. 허를 찌르는 유머와 천진난만함이 작품 곳곳에 스며 있었다.


다시 전시실을 걸었다.

2층에는 판화 작품들과 건축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형광색을 실험한 흔적, 일본 판화 기법을 탐색한 작품들. 회화에서 판화로, 건축에서 생태 디자인으로. 그는 70대에도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With graphic art I enter a paradise which I cannot reach with my brush."

그래픽 아트로 나는 붓으로 닿을 수 없는 낙원에 들어간다.


유리 너머로 커다란 건축 모형이 보였다.

'The Meadow Hills' 초원이 있는 언덕. 1989년 건축가 피터 펠리칸과 함께 만든 생태 마을 계획이었다. 건물 지붕이 길이자 언덕이 되어 땅과 건축의 경계가 사라졌다. 아이들이 지붕 위를 뛰어다니고, 강아지와 양들이 풀을 뜯고, 나무 사이로 물이 흐르는 풍경. 마치 작은 마을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그가 꿈꾸는 도시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생태마을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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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 꽃들 (판화, 교토 1987) / 초원이 있는 언덕 (건축 모형, 1989)


1층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나무와 식물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카페 마당까지 그의 흔적이 바닥 타일로 남아 있었고, 현대적인 파란 테이블, 노란 의자, 빨간 의자에 그의 색이 묻어 있었다. 산들바람에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사이로 건물을 다시 올려다봤다.


'백 개의 물이란 이름처럼,

그의 삶 자체가 다채로운 작품이었네.'



용기가 필요한 일


비엔나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그곳을 찾았다.

여전히 알록달록했고, 여전히 불규칙했으며,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훈데르트바서,

예술과 삶의 경계가 없었던 사람!'


자신의 일과 삶을 일치시킨다는 것.

그건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타협하지 않는다는 건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뜻이니까. 그럼에도 그는 그렇게 살았고, 지금도 살아 숨 쉬며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도 조금은, 나의 신념 대로 살고 있나?'


훈데르트바서는 직선을 거부한다고 말하고, 실제로 직선 없는 건물을 지었다.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나무가 자라는 집에서 살았으며, 70대에 회화에서 판화 작업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사랑한 나무 아래로 돌아갔다.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살았던 사람.
자신이 믿는 대로 살다 자연으로 돌아간 예술가.

그 용기와 일관성이 어쩌면 그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예술작품인지도 모른다.


그는 삶 전체로 자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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