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프랑크의 디자인 / 비엔나 가구 박물관에서
지하철 U3, 치글러가세 역에서 내렸다.
쇼핑 거리를 걸으며 문득 작년 스톡홀름의 한 순간이 떠올랐다.
작은 인테리어 숍, 창밖으로 보이던 눈부신 패브릭.
열대 식물들이 천 위에서 춤추듯 뒤엉켜 있었다. 커다란 몬스테라 잎, 붉은 양귀비, 구불구불한 덩굴. 그 순간 가슴 언저리가 보드랍게 술렁였다.
"이 패턴, 누가 만든 거예요?"
"요제프 프랑크요. 오스트리아 디자이너인데, 스웨덴에서 활동했죠."
패브릭을 한참 바라보다 가게를 나섰다.
그때는 이름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돌아왔는데, 어딘가 아쉬웠다.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런데 비엔나에서 그의 전시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엔 제대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목적지. 비엔나 가구 박물관(Möbel Museum Wien), 요제프 프랑크 특별전.
작은 골목길로 접어들자 미술관 돌출간판이 보였다. 주변엔 나지막한 주거 건물들과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가 있었고, 하얀 회화나무 꽃들이 그윽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좁다란 입구를 지나자 작은 정원이 나왔다. 분홍 꽃과 초록 덩굴로 잘 정돈된 화단. 초록 잔디 위엔 등을 기댈 수 있는 자주색 의자들. 커다란 파라솔 아래 매달린 알록달록한 전구들. 경쾌한 분위기였지만 정원엔 아무도 없었다.
'관광 명소가 아니어서 그런가?'
오히려 좋았다. 북적이지 않아 천천히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본관으로 들어섰다.
첫 전시실에는 황후 엘리자베트의 초상화. 화려한 드레스, 우아한 자세. 어디를 가도 남아 있는 황실의 흔적이었다. 이어진 전시실엔 19세기 귀족 가구들. 하나같이 아름답긴 했지만 솔직히 그다지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예쁘긴 한데... 그냥 가구 박물관이네.
뻔하지 않은 게 좋은데.'
나는 유물을 나열만 한 전시보다 관람자가 참여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전시를 더 좋아한다. 비엔나 박물관의 천당과 지옥 저울처럼. 그렇게 여러 전시실을 무덤덤하게 걷다가, 드디어 도착했다.
요제프 프랭크와 오스트리아 디자이너들: 새로운 가구 1920~1940.
문을 열자 1920년대 실내 공간이 펼쳐졌다. 초록색 벽지가 숲처럼 보이는 사냥룸, 건축가 아돌프 루스가 설계한 아파트, 아터 호숫가 주택 거실. 복도를 따라 공간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연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넓은 공간에 패브릭과 목재로 만든 모던한 가구들이 적절한 여백을 두고 채워져 있었다.
'모던한데 따뜻하네!'
20세기 모더니즘 가구를 떠올리면 금속과 유리의 차가운 감성인데, 이 공간은 달랐다. 부드러운 목재, 밝은 색상, 꽃무늬, 다양한 직물. 딱딱한 모더니즘에 생명을 불어넣는 프랑크만의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벽면 가득 펼쳐진 패브릭.
벽 한쪽을 거대한 직물이 뒤덮고 있었다.
두릅나무를 그린 아랄리아(Aralia) 패턴.
천 위에 대담한 스타일의 꽃과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커다란 몬스테라, 마로니에 잎, 붉은 양귀비. 그 사이로 빨강, 노랑, 파랑의 야생화들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며 다채로움을 만들었다. 마치 살아있는 정글 같았다.
그 옆의 패턴, 미라켈(Mirakel).
가을빛이 만발했다. 꽃들은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이었다. 환상적인 대형 꽃, 구불구불한 덩굴, 수많은 점들. 자연에서 볼 수 없는 상상의 꽃들 사이로 덩굴이 얽혀 역동성을 만들고, 배경의 점들은 연못이나 별빛 같았다.
'영국 디자이너, 윌리엄 모리스의 패턴 같기도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설명 패널을 읽어보니 역시 윌리엄 모리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자연의 형태를 사용해 실내 공간에 편안함과 생동감을 불어넣으려 했던 요제프 프랑크.
또 다른 패턴은 패브릭 소파를 감싸고 있었다. 천 개의 꽃(Mille Fleurs).
수많은 작은 꽃과 식물들을 하얀 배경에 다채롭게 배열한 디자인. 노란 튤립, 연보라 방울꽃, 파란 패랭이, 분홍 데이지. 그 사이로 둥근 잎, 뾰족한 잎, 길쭉한 잎, 넓죽한 잎들이 싱그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선과 면, 그리고 풍성한 색채들이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뤘다.
절제하지 않았지만, 어지럽지 않았다. 한참을 서서 그 소파를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거... 내가 그리고 싶었던 거잖아.'
작은 샘물에 물이 퐁퐁 솟아나듯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연구논문으로 번 아웃이 왔던 40대.
그때 나는 패턴 디자인에 빠져 들었다.
자연의 형태를 관찰하고, 그것을 내 방식으로 해석해서 패턴으로 만드는 일.
꽃잎의 곡선, 나뭇잎의 결, 새의 깃털. 그런 것들을 펜으로 그리고, 배열하고, 반복시키는 과정에 빠져들었다. 색상 팔레트를 바꿔 하나의 패턴이 전혀 다른 분위기로 변하는 순간을 보는 일도 좋았다. 책상 앞에 앉으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하나 둘 만들었던 패턴들을 모아 <리아의 정원> 일러스트 패턴북을 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새 그 일에서 멀어져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학교 일이 우선이라는 핑계로. 하나를 만들어도 독특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나중에'라는 말로 자꾸만 뒤로 미뤄두고, 급기야 언제부턴가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80년 전 요제프 프랑크의 텍스타일 앞에서.
나는 오래전 잊고 살았던 내 안의 진짜 나를 다시 만났다.
'천 개의 꽃' 패브릭 소파.
다시 그 앞에 섰다.
어느새 마음이 먹먹해졌다.
오래 미뤄뒀던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리고 싶었던 것들. 만들고 싶었던 것들. 표현하고 싶었던 것들.
천천히 전시실을 다시 둘러봤다.
프랑크가 디자인한 목재 의자, 패브릭 소파, 발받침 스툴. 그의 디자인에는 자연이 흐르고 있었다. 소파를 덮은 열대 식물 패브릭, 커튼에 수놓인 들꽃, 금속과 유리 대신 선택한 나무의 결.
'이 사람은 자연을 사랑했구나.'
단순히 모티프로 사용한 게 아니라, 자연 그 자체를 존중하고 기뻐하며 디자인했다는 게 느껴졌다. 다채로운 색상, 무질서 속의 질서. 자연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요제프 프랑크는 패턴디자인으로 생명의 미학을 보여줬다.
그리고 나는 프랑크의 생동하는 형태와 색감에 끌렸다.
절제된 기하학보다는 자유로운 곡선이.
모던한 단순함보다는 풍성한 자연이.
'그게 나였구나.'
가구 박물관을 나왔다.
비엔나의 오후 햇살이 따뜻했다. 쇼핑 거리를 지나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
일부러 찾아간 요제프 프랑크 특별전에서,
나는 오래전 잊고 살았던 나를 다시 만났다.
'왜 이렇게 오래 미뤄뒀을까?'
잠시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하나씩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고.
그림책을 만들어보고, 일러스트를 그려보고, 자연을 내 방식으로 패턴에 담아보고.
프랑크처럼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표현하는 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40대에 빠졌던 그 일을, 50대가 지나기 전에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그 꿈은 사라진 게 아니라, 잠시 멈춰 있었던 것.
집에 돌아가면, 서랍 속 색연필부터 꺼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