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쾨니히 서점, 뮤지엄 콰르티어(MQ)에서
"여행 다녀오면 달라질 거야.”
출발 전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굳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나조차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면 뭔가 극적인 일이 생기지 않을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풍경 속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전과는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막상 와보니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길을 걷고, 저녁이 되면 피곤했다. 특별한 깨달음도, 극적인 전환도 없었다. 전주가 아닌 다른 도시에서 그저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변화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찾아오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나에게는 작은 변화조차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날도 특별한 계획 없이 걷고 있었다.
큰길 건너편에 18세기 옛 황실 마구간 건물이 나타났다.
바로크 양식의 가로로 긴 크림색 파사드를 가진 뮤지엄스 콰르티어, 줄여서 MQ. '대규모 문화 예술 지역'이라는 이름처럼 여러 미술관과 박물관이 모여 있는 복합문화공간이었다. 하지만 내 시선을 먼저 사로잡은 건 웅장한 건물이 아니었다.
거대한 레고 블록을 닮은 안락의자. 엔지 라운저는 광장 한가운데 웅크린 도형 같았다. 바다와 하늘 사이 어딘가의 색, 그린블루 슬레이트(green-blue slate). 진한 바다 빛을 머금은 독특한 색감이 회색 석재 바닥과 어우러져 시원한 대조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라운저 위에 기대거나 아예 드러누워 책을 읽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태양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자세는 자유롭고, 표정은 느긋했다. 선글라스를 낀 채 나도 그들처럼, 라운저에 발을 뻗고 누워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무심히 흘러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몸을 맡기자, 비로소 풍경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라운저 주변은 도시 한복판의 여름 정원 같았다. 이동식 조경이 작은 초록 섬처럼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나무껍질과 흙을 커다란 그물망으로 감싸 인공미를 최대한 덜어낸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그물망 아래 깔린 나무 팔레트까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하나의 공공예술 작품 같았다.
회색 현무암의 현대미술관(MUMOK)과 흰 석회암의 레오폴드 미술관 사이의 넓은 광장. 정오의 햇살이 두 미술관 벽을 부드럽게 감싸며 광장은 따뜻한 빛으로 가득 찼다. 사각형 수공간은 한낮 오아시스 같은 시원함을 줬고, 야외 문학 축제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은 커다란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은 채 웃음을 나누고 있었다. 노천카페의 커피 향은 여름 공기를 가르며 천천히, 따스하고 나른한 대기 속으로 흩어졌다.
특별한 행사가 없어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곳.
뮤지엄 콰르티어 건물에서 서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 Walther König Buchhandlung 이라고 적혀 있었다. 발터 쾨니히 서점. 나중에 예술 전문 서점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때는 그냥 호기심에 이끌려 들어갔다. 서점은 대형 서점만큼 거대하진 않았다. 크기보다는 공간이 주는 밀도가 특별했다. 사각기둥에서 뻗어 올라간 둥근 아치들이 리듬감을 줘서 웅장함과 친근함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마치 누군가의 근사한 비밀 서재에 초대받은 기분이었다.
예술, 건축, 사진, 영화, 음악, 디자인. 책등에 적힌 단어들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책들이 단순히 진열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 정성스럽게 선택해 놓은 느낌이 들었다.
한 권을 꺼내 펼쳤다. 에곤 실레의 드로잉 화집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조용한 서점 안에 작게 울렸다. 실레의 선은 불안하고 거칠고 날카로웠지만, 동시에 아름다웠다.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솔직한 선들.
서점에는 나 말고도 몇 명이 더 있었다. 한 남자는 건축 서적 코너에서 한참을 서 있었고, 젊은 여자는 바닥에 앉아 사진집을 펼쳐놓고 있었다. 모두 조용히 각자의 취향을 따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나도 한동안 그곳에 있었다. 책을 고르려고 들어온 건 아니었지만, 책들 사이를 배회하는 시간이 좋았다. 손끝으로 책등을 쓰다듬고, 제목을 읽고, 가끔 한 권을 꺼내 펼쳐서 종이 질감을 느껴보는 것. 조용히 숨을 고르는 순간들. 각양각색의 표지 디자인은 내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형상과 배경, 텍스트가 이루는 다양한 조합.
고요한 서점 안, 수많은 표지 디자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여백을 어떻게 채우고 비울지 고민했던 디자이너 시절의 습관이 되살아났다. 나는 책을 읽는다기보다, 수백 가지의 타이포그래피와 색감, 그리고 종이의 질감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 얇은 종잇조각이 가진 힘. 시각과 촉각이 충족되는 순간. 내게는 이것이 오페라를 보는 것만큼이나 충분한 예술이었다.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시간은 늘 행복하다.’
그 작은 행위들이 쌓여 한 시간이 되었다.
결국 작은 책 한 권을 샀다.
일본 선불교 승려가 쓴 책, 'A Monk's Guide to a Clean House and Mind'. 청소, 설거지, 풀 뽑기, 낙엽 줍기 같은 일상적인 집안일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내용이었다. 일상 속 명상 같은. 특별한 내용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이 서점에서 산다는 게 달랐다. 어쩌면 사소한 물건 하나로 이 시간과 공간을 기억하고 싶은, 인간의 지극히 당연한 욕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계산대 직원이 책을 조심스럽게 하얀 종이봉투에 넣어주었다. 계산대 옆 진열대에는 작은 엽서들이 놓여 있었다. 파란색 엽서 한 장에 작은 글씨가 흰색으로 인쇄되어 있었다.
"Small movements, still matter."
작은 움직임도 여전히 중요하다.
그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작은 변화도 변화다.'
서점을 나와 다시 광장으로 돌아왔다.
청록색 의자. 작은 서점. 모든 것이 똑같았다. 단지 내 손에 작은 책 한 권이 생겼을 뿐이었다.
내 인생을 바꾼 중요한 변화들도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미술 선생님의 별것 아닌 칭찬이 그림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했고, 화학을 전공하며 실험보고서를 쓰던 틈틈이 도서관 창가에 앉아 봤던 ‘미술과 디자인’ 잡지가 내 삶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대학 3학년 때 ‘잘할 수 있는 일, 나이 들어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고민하던 시기, 도서관에서 하나씩 찾아보던 디자인 책들은 내 마음에 새로운 꿈을 심어주었다. 그 이후로 대학원 진학과 디자인 실무를 거쳐 대학 교수가 된 지금, 그 길로 들어선 지 벌써 30년이 되어간다.
변화의 시작은 늘 사소하고도 단순했다. 누구나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지만, 변화는 언제나 미세한 틈새로부터 서서히 시작된다. 그 '아주 작은 틈'이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어쩌면 나는 어제와는 아주 조금 달라졌는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달라졌다. 작은 변화도 변화니까.
아주 작은 변화는 언제나 소리 없이 찾아온다.
광장의 의자에 누워 하늘을 보는 순간,
서점에서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서,
책 한 권을 고르는 작은 선택 속에서.
그렇게 조용히,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