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기분이 어때?

페르디낭 호들러, Emotion I / 알베르티나 미술관에서

by 최은희

연한 피치톤 들판 위, 네 여자가 서 있었다.


푸른 드레스를 입은 그녀들은 맨발로 두 팔로 자신의 가슴을 감싸 쥐고 있었다. 괴로움인지 평온함인지 모를 표정. 시선은 각자 다른 곳을 향했다. 초록 잔디 사이로 빨간 꽃들이 드문드문 피어 있었다. 양귀비 같은 작은 꽃들.


페르디낭 호들러의 Emotion I (1901-02).

작품 제목을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감정이라니.'



폴 델보의 담담한 밤을 보고, 알베르티나의 다른 전시실로 향했다.

죽음 앞에서도 평온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안고 걷다가, 파란 드레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네 여자를 만났다.


델보의 인물들이 서로를 보지 않은 채 담담히 서 있었다면, 호들러의 여자들은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며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느린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의식을 행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늘하늘한 푸른 드레스, 굵고 뚜렷한 인체의 윤곽선,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한 근육들.

그런데 표정과 달리 손 동작이 강렬했다. 힘 있게 움켜쥔 손끝 하나하나에서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듯 쏟아지는 것 같았다. 호들러는 이 손을 통해 여자들의 내면을 드러내려 했던 걸까. 지금 이 순간 느끼는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작품인데, 아무런 설명이 없어 얼른 검색해봤다.

스위스 출신 상징주의 화가 페르디낭 호들러. 인간의 근원적 감정을 그린 화가. 기쁨, 슬픔, 사랑, 두려움.



페르디낭 호들러. Emotion I (1901~1902)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유연하게 몸을 휘감은 드레스의 부드러운 흐름. 그런데 그 아래 근육은 탄탄했다. 굳건히 땅을 디딘 다리 근육은 운동선수처럼 울룩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부드러움과 강인함의 대비.


푸른색으로 통일감을 준 드레스는 노출 형태를 달리해 리듬감을 주었다. 머리의 웨이브도 유사하면서 조금씩 달랐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리듬, 대비, 균형. 모든 게 계산된 것 같았다.

그런데 알 듯 모를 듯한 무언가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 여자의 표정은 명확하지 않았다.

왼쪽 끝 여자는 눈을 감고 있는 듯 보였다. 내면으로 깊이 침잠하는 것처럼. 그 옆 여자는 입을 꾹 다문 채 정면을 응시했다. 무언가를 직시하려는 듯. 세 번째 여자는 고개를 완전히 돌렸고, 네 번째 여자는 고개를 살짝 돌려 어딘가를 바라봤다.


같은 들판에 있지만 서로 다른 모양새의 파란 드레스.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씩 다른 자세.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분명 달랐을 것이다.


슬퍼 보이는 사람도 있고,

평온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감정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애매함이 오히려 진실처럼 느껴졌다.


'감정이란 원래 이렇게 복잡한 거니까.'


기쁜지 슬픈지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순간들.

화난 건지 서운한 건지 구분할 수 없는 마음들.

우울한 건지 그냥 고요한 건지 헷갈리는 시간들.


호들러는 그 복잡함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감정은 단순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네 여자는 각자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며, 그 복잡한 감정을 온전히 안고 있었다.




연한 피치톤 배경이 인상적이었다.


델보의 밤이 검고 무거웠다면,

호들러의 들판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죽음의 색이 검은색이라면, 감정의 색은 이 부드러운 피치톤이었다. 위협적이지 않고, 공격적이지 않은. 조용히 감싸는.


그리고 빨간 꽃들. 양귀비처럼 보이는 작은 꽃들이 초록 잔디 사이에 드문드문 피어 있었다. 생명의 징표이자 고통의 상징. 호들러에게 파란색은 영성과 초월을 의미했다고 한다. 열정과 욕망을 상징하는 빨간색과 대조를 이루며.


그는 1890년대 말 연인의 죽음을 겪었다고 했다. 그 슬픔 속에서 그는 인간의 감정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슬픔' '절망'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다면적이고도 복잡한 그 감정들을.




이번 비엔나 여행은 동생과 함께였다.

심리학자인 동생은 프로이트 박물관으로,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나는 가구박물관이나 응용미술박물관으로. 각자의 관심사를 따라 흩어졌다가 다시 만나곤 했다. 오늘은 알베르티나 미술관에 같이 왔다.


"언니."


뒤에서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함께 입장했지만, 각자 관람 속도가 달라 흩어졌다가 이 전시실에서 다시 만났다.


"이 그림 좋다."

"응, 나도."


우리는 그림 앞에 나란히 섰다.

동생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프로이트 박물관 1층에서 찍어온 문구였다.


"How do you feel today?" '지금 기분이 어때'라는 뜻.


프로이트 박물관 1층에 있는 문구, How do you feel today?


"저 여자들이랑 똑같은 질문이네!

그런데 네 명이 각자 혼자 같으면서도 외로워 보이진 않아."


동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있어서 그런가 봐."


네 여자는 서로를 보지 않는다.

대화도 나누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들판에 함께 서 있다.

각자의 감정을 안고 있지만, 혼자가 아니다.


"지금 기분은 어때?"


동생이 물었다. 갑자기.


"좋아. 너랑 여기 있으니까 좋아."


동생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오십을 넘기니 내 감정이 뭔지 모를 때가 많았다.


결혼 후 돌봐야 할 사람들이 많아졌다. 두 아이, 시부모님, 남편. 공부, 육아, 집안일, 강의 준비. 너무 바빠서 내 감정은 늘 후순위였다. 슬픈 건지, 화난 건지, 그냥 피곤한 건지. 감정을 너무 오래 눌러놓으니 감각이 무뎌진 것이다.


동생도 비슷했다고 했다. 20대 진로 방황을 할 때 혼자인 것 같아 힘들었다고.


그런데 비엔나에서는 달라졌다.

‘어제 잘 잤어?’, ‘이거 보니까 뭔가 울컥하네’, 이런 말들을 다시 할 수 있게 됐다.

쉼의 여행이 지금 여기서의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준 건지도 모르겠다.


벨베데레에서 만난 실레는 고독을 드러냈고,

알베르티나에서 만난 델보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였고,

호들러는 감정의 복잡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비엔나 미술관에서 새롭게 발견한 세 가지.

고독도, 죽음도, 감정도,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




알베르티나 2층 전시실을 나와 계단을 내려왔다.

로비의 유리 천장 너머로 오후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언니, 우리 카페 갈까? 케이크 먹고 싶어."

"그래, 가자."


미술관 밖으로 나오니 알베르티나 광장의 초록 토끼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페에 앉아 케이크를 먹으며 동생이 다시 물었다.


"언니, 진짜 지금 기분이 어때?"

"좋아. 진짜로."


동생이 빙그레 웃었다.


늘 감정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언니. 타인을 돌보는 데 우선순위를 두는 언니. 넉넉한 배려심으로 동생들을 대하는 언니. 동생은 그걸 알고 있어서 다시 한번 물었던 것 같다. 내 진짜 기분을, 내 진짜 마음을.


"나도 좋아. 언니랑 비엔나에 와 있으니까."




한 달의 비엔나가 얼마 남지 않았다.

돌아가면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호들러의 여자들처럼 멈춰 설 것이다.

나를 껴안고,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 내 곁의 사람들에게도.

비엔나에서 다시 찾은 이 질문을, 나누고 싶다.


"지금 기분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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