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사랑과 날것의 고독 사이

벨베데레 궁전에서,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by 최은희

"띵동"


밤 열 시, 초인종이 울렸다.

비엔나에서 내가 아는 사람은 호스트 바바라뿐이다. 이 시간에 누가?


소파에 앉아 있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목재 출입문엔 도어뷰어가 없다. 똑똑, 노크 소리가 두 번 이어졌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잘못 들은 건가? 숨을 죽인 채 문 앞을 응시했다.


누가 있는지도 모른 채 문을 열 수는 없다. 여기는 머나먼 이국땅이니까.


여행에는 늘 이런 순간이 있다. 설렘 뒤에 숨어 있는 불안. 낯선 곳에서 무탈하게 보낸 날들이 당연한 게 아니라, 어쩌면 운이 좋았던 것뿐이라는 깨달음.


두꺼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밤을 그렇게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바바라가 와서 확인해 보니 초인종 스피커 고장이었다.

그제야 안심이 됐지만, 어젯밤 잠을 설친 탓인지 온몸이 무거웠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뭉그적댔다.


'한 달이 30일인데, 매일 완벽할 순 없지.'


두 시간쯤 흘렀다. 몸이 조금 가벼워지자 마음도 따라 일어났다. 부엌으로 가서 오스트리아 국민 바게트, 젬멜 빵에 링곤베리 잼을 발랐다. 상추와 치즈, 토마토를 끼워 넣고, 그릭 요거트에 견과류와 바나나를 섞었다. 나를 위해 한 끼를 만드는 일. 이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하루를 시작하는 나만의 의식이다. 창밖을 보니 빗줄기가 유리에 가느다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이런 날씨엔 에곤 실레 작품이 어울릴 것 같은데.'


오늘은 벨베데레 궁전으로 가자. 오스트리아 황실의 여름 별장이자, 회화 컬렉션을 전시하는 곳.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를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곳으로.

한 달이라는 시간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빡빡한 일정을 짤 필요가 없다는 것.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움직여도 결국 내가 보고 싶었던 것들은 다 만나게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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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문 쪽에서 바라 본 벨베데레 상궁(Upper Belvedere)


D 트램이 쿼르티에르 벨베데레에 멈춰 섰다.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쳤고, 흐린 하늘 사이로 옅은 햇살이 비쳤다. 관광객들이 몰려가는 방향과 반대로, 인적이 드문 후문 쪽으로 걸었다.


멀리 벨베데레 상궁의 크림색 건물이 보였다. 민트색 지붕을 얹은 건물은 웅장하면서도 우아했다. 상궁의 정원에 들어서니 시야가 확 트였다. 상궁에서 하궁까지 넓은 정원이 완만한 경사를 따라 펼쳐지고, 그 너머로 비엔나 도심이 한눈에 들어왔다. 흐린 날씨가 조금 아쉬웠다.


'화창한 날이었다면 더 예뻤을 텐데.'


여긴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 햇살 좋은 날.




찰나와 영원 사이


궁전 안으로 들어섰다. 천장의 프레스코화, 신화 속 인물들이 구름 사이를 유영하고, 천사들이 춤추고, 금박 장식들이 샹들리에 빛을 받아 사방으로 반짝였다.


'와, 예상보다 훨씬 화려한데?'


하지만 벨베데레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갔다. 클림트의 작품들이 있는 방. 대부분의 관람객은 '키스' 앞에 몰려 있었다. 나도 그 앞에 섰다. 실제로 본 '키스'는 생각보다 컸다. 금빛 장식들이 캔버스를 뒤덮고, 그 속에 두 사람이 있다. 남자는 여자를 감싸 안고, 여자는 눈을 감은 채 그 품에 몸을 맡겼다. 세상과 단절된 듯한. 오직 둘만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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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1908. / 벨베데레 궁전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 남편과 사랑에 빠졌을 때, 세상이 온통 반짝임으로 빛나던 시절.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설레고, 그의 손만 잡아도 심장이 두근거리던 때.


결혼한 지 이제 27년.

그때의 반짝임은 조금씩 바래졌다. 설레는 대신 익숙해졌고, 두근거리는 대신 편안해졌다. 사랑이라는 말보다 '정'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나이가 됐다. 서로를 돌보며, 함께 늙어가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


화려한 금박이 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 반짝임 속에서 사랑은 영원할 것 같았지만, 동시에 금세 사라질 것 같기도 했다. 찰나와 영원이 공존하는 순간. 클림트는 알고 있었을까. 이 찬란한 순간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이렇게 금빛으로 덮어 영원히 남기려 했던 걸까.


키스라는, 세상이 멈춘 것 같은 그 순간이 여기 남아 있다.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섰다. 잃어버린 그때의 반짝임을 그리워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는 것. 사랑은 변한다는 것,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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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 <아터 호숫가의 카머 성 산책로> 1912.


나무가 말을 걸다


하지만 나는 클림트의 풍경화 앞에 더 오래 머물렀다.


'사각형 풍경화(Landscape in Squares)'


화려한 장식과 상징으로 가득한 인물화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자연을 향한 순수한 시선. 그는 여름휴가마다 아터 호수에 머물며 풍경을 정사각형 캔버스에 담았다. 가로 세로, 1:1 비율. 이 낯선 비율이 오히려 시선을 붙잡는다. 고요하고 정적인 분위기. 자연 자체에만 오롯이 집중하게 만든다.


그의 여러 작품 중, '아터 호숫가의 카머 성 공원 산책로(1912)'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화려한 장식도, 상징도 없다. 옅은 초록부터 어두운 녹색까지, 그저 나무들뿐이다. 점묘법을 연상시키는 세밀한 터치로 표현된 나뭇잎 하나하나. 곧게 뻗은 산책로 양쪽으로 키 큰 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한참을 들여다봤다.

무수한 붓 터치로 표현된 잎사귀들이 살아 숨 쉰다. 정지된 풍경 속에 미묘한 역동성. 고요 속의 생명력이다. 특히 나무의 굵은 몸통에서 하늘을 향해 구불구불 뻗어나간 가지들.


'저 가지들은 비바람에도 거뜬히 견뎌낼 거야.'


자연 앞에서 겸손해졌을 클림트. 화려한 장식도, 상징도 필요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냥 나무로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나도 저 나무들처럼,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그냥 나로 서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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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 <가족> 1918.


고독을 그리다


3층으로 올라갔다. 아방가르드 1920s~1970s 전시실.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에곤 실레의 작품들. 클림트의 화려함을 보고 온 내 눈에 실레의 세계는 충격이었다. 삶과 죽음, 슬픔과 공허가 왜곡된 신체와 날카로운 선, 불안한 색채로 드러나 있었다.


'가족(Die Familie, 1918)' 작품 앞에 섰다.

20세기 초 유럽의 불안과 개인의 고독이 날것 그대로 담겼다. 전통적인 가족 초상화의 따뜻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각자의 고립과 불안이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원제목은 '쪼그리고 앉은 커플'. 남성과 여성, 아이가 수직적 구도로 배치되어 있다.

실레는 이 그림을 그린 해, 임신 6개월째였던 아내 에디트를 스페인 독감으로 잃었다. 그리고 며칠 후 자신도 세상을 떠났다. 스물여덟 살.


'새로운 가족을 꿈꾸며 그렸을 텐데...'


하지만 그림 속 가족은 행복하거나 따뜻하지 않았다. 그들은 함께 있지만 서로를 보지 않았다. 각자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고,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었다. 실레는 그 거리를 정직하게 그렸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지는 고독을.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선명한 균열을.


누군가 가까이 있어도 두꺼운 문 하나를 사이에 두면 완전히 단절되는 것처럼. 실레의 가족들도 그랬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자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렸을 것이다. 아름다운 거짓말 대신 불편한 진실을, 조화로운 가족의 모습 대신 각자의 고독을, 황금빛 찬란함 대신 날것의 어둠을.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섰다.

어느새 눈가가 뜨거워졌다.

왜 우는지 모르겠다. 슬퍼서인가, 위로받아서인가. 아니면 너무 정직해서인가.


27년을 함께 살았지만, 우리도 각자의 세계가 있다.

남편과 나. 가까이 있지만 완전히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서로를 알 것 같지만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있다. 함께 있어도 외로운 순간이 있다. 부부 사이도, 부모 자녀 사이도. 그걸 인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실레는 그걸 그렸다. 숨기지 않고. 포장하지 않고. 실레의 솔직함이 위로가 됐다.

삶이 늘 아름다운 건 아니라는 것.

가까운 사이에도 거리가 있다는 것.

그래도 우리는 살아간다는 것.


고독을 인정하는 것도 용기라는 걸.

그 정직함이 오히려 나를 자유롭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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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베데레 기념품 숍 엽서들 / D 트램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전시를 다 보고 1층 기념품숍으로 내려왔다.

클림트의 풍경화 엽서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아터 호숫가의 카머 성 공원 산책로.

원작처럼 재현될 수는 없지만, 그 윤곽만으로도 무언가는 전달된다.


궁전을 나서니 언제부턴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느새 D 트램이 도착했다.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젯밤의 초인종 소리. 문 앞에서 숨죽이던 순간.

오늘 클림트의 황금빛을 봤다. 영원을 꿈꾸는 사랑의 찰나.

그의 나무들도 봤다. 혼자 서 있어도 견고한 나무들.

실레의 가족도 봤다. 고독을 숨기지 않은 정직한 그림.


삶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불안과 고독도 우리 안에 있다.

하지만 괜찮다.


황금빛 사랑은 아련한 추억을 남기고,

나무는 혼자 서 있어도 견디고,
고독은 인정하는 순간 조금 가벼워지니까.


황금빛 찬란함과 날것의 고독.
그 둘 사이 어딘가에 내가 있다.




집에 돌아와 여행 다이어리를 펼쳤다.

오늘 산 엽서를 붙이고, 그 옆에 펜을 들었다.


'사랑은 변한다. 찬란함에서 고요함으로.
그것이 슬픈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임을 오늘 배웠다. -클림트와 실래 사이 어딘가에서-'


그리고 한 줄 더 적었다.


"혼자 태어나고, 혼자 살고, 혼자 죽는다.
사랑과 우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잠시 혼자가 아니라는 환상을 만들 수 있다. -오손 웰즈-"


비 내리는 비엔나의 밤.
다이어리를 덮고 창밖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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