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가 살던 동네의 작고 특별한 서점

비엔나의 작은 서점, 책이 품은 시간을 만나다

by 최은희

오래된 골목길을 걸으며 자주 마주치는 것은 서점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나는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춘다. 슈테판 대성당 근처의 200년 된 프란츠 레오 서점도, 모차르트 오페라 주인공 이름을 딴 레포렐로 서점도 그렇게 들렀다.


핸드폰 하나면 책도, 신문도, 온갖 뉴스도 접할 수 있는 세상인데, 비엔나 사람들은 여전히 책을 읽는다. 트램 안에서도, 카페 모퉁이에서도, 공원 벤치에서도 누군가는 책장을 넘기고 있다.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저 사람도 나처럼 종이의 촉감을 좋아하는 걸까?'


여느 때처럼 프로이트 박물관 근처를 걷고 있었다.
그러다 한 서점 앞에서 발걸음이 완전히 멈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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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흐슬리 북 운트 파피어 / 책과 문구를 파는 독립 서점


베르크가세 27.

프로이트가 47년 동안 살았던 동네의 작은 거리. 커다란 플라타너스와 물푸레나무가 넉넉한 그늘을 내어주었다. 안온한 공기를 느끼기에 좋을 작은 카페와 레스토랑 사이로, 손바닥만 한 서점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Oechsli Buck & Papier. 외흐슬리 북 운트 파피어.

Buck은 독일어로 책. Papier는 종이.


'책뿐만 아니라 문구까지 파는 곳인가?'


호기심으로 두 눈을 반짝이며 쇼윈도를 들여다보았다. 한가운데 붙여놓은 상큼한 레몬 포스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소설과 에세이로 보이는 책들이 따뜻한 톤에서 시원한 톤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폰트 자체만으로도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책들. 하얀 페인트로 칠해진 벽 코너에는 그래픽 포스터, 엽서, 포켓북이 인접한 것끼리 색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쇼윈도 안쪽으로 설치된 하얀 격자 프레임의 유리창을 통해 서점 내부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한쪽 유리창은 닫혀 있고, 다른 쪽은 안쪽으로 열려 있었다. 마치 '궁금하면 안으로 들어오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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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정돈된 쇼윈도의 안 쪽 창문으로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서점 / 디자인 엽서들


어떤 공간은 말없이 나를 끌어당긴다.


출입문 앞 금속 테이블에 놓인 회전형 진열대의 엽서들은 무심한 듯 놓여 있었지만, 관광지 기념품 숍에서 봤던 엽서와는 분명히 달랐다. 서점 주인의 고르고 고른 취향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 엽서들. 그 옆에 놓인 작은 로즈메리 화분마저 상큼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활짝 열려 있는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작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책과 수제 노트, 편지지, 예술 서적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빈틈이 없었다. 천장이 높아서인지 전혀 답답하지 않았다. 하얀 페인트를 칠한 벽과 천장, 목재를 45도 지그재그 패턴으로 깐 바닥. 밝은 나무 책장과 선반 구조물, 천장에 줄 지어 매달린 노출형 전구가 어우러져 소박하고 편안한 감성을 자아냈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가르치며 공간을 수없이 봐왔다.

그런데 이 작은 서점은 효율보다 온기를, 기능보다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쇼윈도를 향해 열려 있는 창가엔 20세기 모던디자인의 선구자였던 찰스 & 레이 임스의 검은색 흔들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곳에 앉아 잠시 책 속에 빠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기적인 곡선의 흐름이 아름다운, 그 의자 위에 놓인 책은 어린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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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초대하는 듯한, 하얀색 격자 창문 옆에 놓인 흔들의자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여우가 말했던 문장이 떠올랐다.



책장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책들이 품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 사이를 거니는 기분이었다.


손끝으로 책등을 쓸어보았다. 매끄러운 종이, 거친 종이, 두툼한 양장본, 얇은 페이퍼백. 제각각의 질감이 손끝에 전해졌다. 소설, 철학, 예술. 독일어 책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림과 디자인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한쪽 코너에는 연필, 종이테이프, 메모지, 노트가 아기자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문구 선반 맨 위쪽에는 비엔나의 주요 장소를 심플하게 그린 디자인 포스터도 놓여 있었다.


"관심 있는 분야가 있나요?"


서점 주인이 다가와 영어로 물었다. 세심하고 친절한 목소리였다. 그녀 이름은 외흐슬리.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진한 갈색의 짧은 헤어스타일을 한 그녀는 하얀색에 파란 줄무늬가 있는 셔츠를 입고 있었다. 왠지 이 서점 공간과 주인이 묘하게 닮은 느낌을 주었다.


내가 서점이 특별해 보여서 들어왔다고 말하자, 그녀는 천천히 책들을 둘러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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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주인의 취향을 반영한 공간 / 책과 문구를 파는 서점

그때였다.

한 손님이 들어왔다. 외흐슬리는 그녀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일어를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그들 사이의 다정함과 신뢰감이 느껴졌다.


손님이 나간 뒤, 궁금해서 물었다.


"저분은 단골손님인가 봐요?"


외흐슬리가 웃으며 대답했다.


"작가예요. 책을 여섯 권 출간했죠.
저기 책장에 그녀의 책들이 꽂혀 있을 거예요."


그녀의 책 몇 권을 꺼내보았다. 구글 검색으로 찾아보니, 안젤리카 레이처(Angelika Reitzer), 1971년생, 현재 비엔나에서 활동하는 문학과 예술을 대표하는 작가였다.


나는 한참을 그 책들을 들여다보았다.

여섯 권의 책을 쓴 작가가 방금 이 공간에 있었고, 그녀의 시간이 이 책장에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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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카 레이처의 책들 / 외흐슬리 서점 내부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녀는 어떤 이야기를 쓰는지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론, 작다고 느꼈던 이 서점이 결코 작지 않다고 느껴졌다.


이곳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었다.

작가와 독자가 만날 수 있는 곳. 책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곳.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가 이 동네에서 무의식을 탐구했다면, 이 작은 서점은 책을 통해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의 시간이 쌓여 있는 서점.'



서점을 나서려던 순간, 출입구 쪽에 아까 못 봤던 액자가 눈에 띄었다.


"2022년 비엔나 올해의 서점"


이 서점이 특별하게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작가와의 원활한 소통. 취향과 정성으로 만든 공간. 단순히 책을 진열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가진 이야기를 전하는 곳이라는 선정 이유가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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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비엔나 올해의 서점, 외흐슬리 북 운트 파피어


나는 선반에 놓인 노란 표지의 작은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미스터 해피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 얇은 두께여서 번역기로 돌려가며 읽기에 부담 없겠다 싶었다.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이 책이 여기 이 서점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엽서 한 장과 함께 책을 계산대로 가져갔다.


누군가 이 책을 썼고,
누군가 이 책을 골랐고,
누군가 이 책을 읽을 것이다.


사물은 시간을 품고 있다.

책 한 권 한 권에 담긴 시간. 작가가 쓴 시간, 서점 주인이 고른 시간, 독자가 읽을 시간.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시간들이 이 작은 서점 안에서 겹쳐지고 있었다.


서점을 나서며 뒤돌아보았다.

작은 창 너머로 보이는 책들이 손 흔들어 주는 것 같았다.

아담한 공간이었지만, 기억에 남을 소소한 즐거움을 가득 안고 나왔다.


비엔나의 큰 미술관도 좋았고,

훈데르트바서의 건축도 놀라웠다.

하지만 이 작은 서점에서 느낀 온기는 또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책으로 만나는 곳.
시간과 시간이 사물로 이어지는 곳.


책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임을. 이 작은 서점이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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