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는 지나치게 사랑과 정이 많았습니다. 일례로 외가에 갈 때는 굶고 허리띠는 한 칸 느슨하게 조정하고 가야 합니다. 전국의 산해진미는 모두 맛볼 절호의 기회이지만 허릿살이 조금 늘어나는 건 각오해야 합니다.
외가에서 며칠 묵으면 반짝반짝 해집니다. 피부는 기름기가 돌고, 흰 옷은 햇볕에 나가면 눈이 부셔 윙크를 유지해야 합니다.그래서 그럴까요.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 두 분을 생각하면 하얀색이 생각납니다. 할아버지는 집안에선 하얀 한복을, 외출할 땐 하얀 양복에 테두리가 있는 하얀 중절모, 백구두를 신었습니다. 부창부수이지요. 할머니도 성당에 가실 때면 하얀 한복에 미사포를 준비했습니다.
두 분은 손자들의 호구였습니다. 아끼는 쌈짓돈과 먹거리를 모두 퍼 주셨습니다. 그분들을 쏙 빼닮은 성정을 지닌 이모와 외삼촌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방학이 기다려졌습니다. 용돈과 귀여움을 독차지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제는 사회인으로서 능력자가 된 저는 아직도 그 빚을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작년부터 저는 호구가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은 열망은 충전되었지만, 기법이나 지식, 기본기는 부족했습니다. 혼자 백 미터 단거리 선수가 되기보다는 함께 멀리 끝까지 완주하는 마라토너가 되고자 했습니다.
열망은 있었기에 구했습니다. 그리고 보였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다.
아는 것을 꺼내고 독식하지 않았습니다. 독식한다고 해서 저만 뽑힌다는 보장도 없을 겁니다.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손잡고 격려하며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했습니다. 정보를 찾고 주었지만 기회는 제게 먼저 찾아오지 않습니다. 함께이기 때문에 맘껏 축하하고 박수를 칩니다.
거창했던 걸까요. 아니면 모래성을 쌓았던 걸까요. 아니면 제가 어리석었던 걸까요. 전 가판에 나온 호구였습니다. 열망에 눈이 먼 것일까요. 그래도 좋았습니다. 지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마음껏 이용당해도.
저는 촉이 뛰어납니다. 오감이 아닌 육감일 수도 있겠고, 저만이 가진 제2의 모공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열리면 백발백중입니다. 이제껏 틀린 적이 없습니다. 네, 전 호구였습니다. 알면서도 속고 속으면서도 좋아서 붉은 실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날개가 돋아난 것을 안 고추잠자리는 가을이 온 것을 가려워서 알았을 겁니다. 날개가 돋기 전에 조금 근질거리는 느낌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 날개가 돋기 전에 등을 긁어달라 해서 긁어준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저도 등이 가렵기 시작했습니다. 가려운데, 자꾸 가려운데 손이 닿기 불편한 지점입니다. 저는 고추잠자리가 긁어줄 줄 알았습니다. 몇 번이나 긁어주고 시원하다고 긁어달라 요청하기도 했으니까요.
동상이몽이었을까요. 몽돌인 줄 알았는데 수석이었나 봅니다. 끝이 뾰족합니다. 모서리가 없는 줄 알았는데 날 세우며 각자를 말합니다. 원래 각자였기에 호구는 괜찮습니다. 저도 이젠 날개가 돋아납니다. 아직은 낯설고 너무 보잘것없어 보여주기 부끄럽지만 점점 자라면 창피하진 않을 것을 잘 압니다.
오늘은 조금 긁어봅니다. 피가 날까 싶어 팔을 쭉 뻗고 지문으로만 살살. 어떴습니까. 당신은 오늘 호구입니까?
괜찮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한 낮은 자세 멋지다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지금 저는 보라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