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오스트리아를 거점으로 중부유럽의 패권을 휘어잡았던 유럽의 향수를 자극하는 가문이 있다.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를 세습하면서 근대 유럽의 얼마 되지 않는 황제 가문으로 최고의 권위와 영예를 누린 합스부르크이다. 독특한 결혼 동맹으로 세력을 늘렸던 이 명문가는 고려의 왕건의 정치적인 야심과 어쩌면 닮은꼴인지도 모른다.
오스칼은 집안 대대로 왕가의 군대를 지휘하는 유서 깊은 집안에서 막내딸로 태어났다. 남장여자로 본성을 의복에 감추고 살아야 했다. 유럽을 양손에 쥔 다이아몬드 수저인 오스트리아의 왕녀로, 루이 16세의 왕비가 된 마리 앙투아네트. 기요틴의 제물로 쓸쓸하게 사라지는 비운을 맞이하고 만다. 스웨덴의 고귀한 가문의 맏아들로서 막대한 권력과 재산보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페르젠. 18세기 중반 유럽의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장차 프랑스의 베르사유에서 만나게 될 이들. 세 사람의 운명의 소용돌이가 시작된다.
만화 강국인 일본의 만화가아 이케다 리요코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전기인 마리 앙투와네트는 평범한 여자의 초상(1932)을 바탕으로 창작한 순정만화를 내놓았다. 프랑스혁명 시기를 다루는 많은 부분을 묘사했다. 주된 등장인물 중 몇몇은 작가가 창작한 허구 인물이다. 잡지 마가렛에 1972년부터 1973년까지 연재했다.
우리나라에는 베르사유 장미로 독자를 사로잡았다. 사춘기 감성을 자극하는 남장여자 cross-dressing은 애니메이션으로 치명적인 미장센을 보여준다. 예술에서 남장여자는 실패할 수 없는 하나의 효자 아이템이다. 로자 보누르도 남장을 하고 시대를 타파해 남성들과 마주쳤다. 드라마에서 보여준 커피 프린스와 미남이시네요가 있다. 최근에 인기리에 종영한 빼어난 연기자 박은빈의 연모 또한 남장여자에서 결국엔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찾는 해피 엔딩을 맞이했다.
갑 중에 갑인 미모를 자랑하는 장미는 오스칼로 더 아름다워졌다.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에 독특한 향을 발산하는 장미가 끌어안고 키우는 마을이 있다. 청초한 흰 장미, 이슬을 머금은 분홍장미, 흔치 않은 노란 장미, 정열의 화신 붉은 장미가 앞다투어 지켜준다. 오월이면 장미 스커트를 입은 마을은 마치 베르사유 궁전에 있으나 자유는 무한대인 정원으로 거듭난다.
자고로 자신을 자랑하여 몸값을 올리는 피아르 시대라고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남들이 띄워주게 만드는 것이 진정 고수일 것이다. 장미는 그 심리를 잘 알고 있다. 얼마 전에 도에서 열댓 명이 마을을 찾았다. 메모라도 하겠다는 듯 펜과 수첩을 들고서 줄줄이 프랑크 소시지처럼 딸려왔다. 마을 지킴이 회장이 볼이 상기된 채 이른 무더위에 구슬땀을 훔치는 것을 보았다.
마치 숲 속에 옮겨놓은 마을 같다는 평이다. 그린 리더에서 그린 선도마을로 추천되어 선출될 마지막 관문은 지난 셈이다. 울타리를 타고 녹음과 어우러졌다. 약간 지대가 높은 마을이라서 붉은 담벼락을 타고 장미 꽃송이들이 마치 하늘에서 하강하는 것과 같은 장관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양봉을 한다면 제법 꿀을 모을 수 있겠다.
배를 곯는 백성들이 빵이 없다고 아우성을 치자, 대단한 뒷배를 가진 반짝거리는 수저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고 말했다는 썰이 있다. 역사는 늘 승리자의 것이다. 만약 픽션이 아니라도 하더라도 그녀는 백성들의 배고픔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환경은 사람을 만든다. 순둥순둥한 처녀가 못된 놈팡이를 만나 독한 여자가 되듯, 도둑인 장발장은 신부를 만나 개과천선했다.
흐드러진 장미를 보며 오스칼과 왕비를 떠올린다. 꽃길 걷는 소녀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세상이 또 자연이 협조해 주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