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시즌_ 오프 더 레코드
부족한 줄은 알지만 떨리는 가슴
바야흐로 신춘문예 시즌입니다.
대부분이 마감되었고 극히 일부가 남아있기는 하나
머지않아 그곳마저 문을 굳게 닫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작가란 꿈을 꾸었습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시인을 꿈꾸었고
중학교에 입학과 동시에 시가 멀어집니다.
현실이란 장벽은 참으로 단단해서 연약한 어린 손톱으론
부서지기 어림없었습니다.
감성적인 전 초등학교 때에 베토벤이 누군지 엘리제가 누군지도 알지 못하면서
엘리제를 위하여 종소리를 듣고 훌쩍거렸습니다.
담임인 J 선생님은 아무런 죄가 없는 짝꿍 M경만을 혼내고 벌을 주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던 경만, 그는 아무런 자기변호 없이 혼나고 두 손을 들고 복도에 서 있었습니다. 바보 같은 저는 그때 너무도 내성적이어서 그에게 미안하단 말도 못 하고 딸꾹질만 해댔습니다.
십 년 후 만난 동창회에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기억도 못하다가 제가 그 상황을 읊어주니까 말하길, 그때 절 좋아했는데 고백을 못한 숙맥이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꿈은 작가였지만 작가란 노력은 하지 않고 루트도 몰랐고 알려는 시도조차 엄두를 못 냈습니다. 왜냐고요? 감성적인 저는 뱅커로 살았으니까요. 초창기엔 참 여유 있던 삶이 어느 순간 각박해지기 시작하더니 워라밸은 개나 주는 상황으로 돌변했습니다.
별 보고 일어나고 달이 졸 때쯤 퇴근하다 못해 주말은 워크숍, 자기 계발이란 허울로 제 시간을 독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거부했더니 인사상 불이익이 알음알음 좀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삼재를 혹독하게 치르게 됐습니다. 어찌나 매몰찬지 베란다의 난간 근처를 가지 못했습니다.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자주 일었거든요. 전 코로나 백신을 단 한 번도 맞지 않았습니다. 그 백신 때문에 전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얘긴 언젠가 제가 소화하고 나면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사회생 혹은 고진감래 아니면 전화위복이랄까요.
제가 열심히 불린 체중을 41킬로까지 앗아간 연쇄살인적인 일들이 소강되고 나서의 일입니다.
저는 참 무식하게도 시인이 되려면 신춘문예만 가능한 줄 알고 있었습니다. 독자 보다 작가가 많아진 세상이 되고 등단의 문이 많다는 걸 몰랐습니다. 지기가 찔러준 공모전으로 전 오랜 꿈을 이루었습니다.
작년에 미친 척하고 신춘문예에 되지도 않는 시를 응모했습니다. 복권도 사지 않으면서 당첨을 꿈꾸는 저가 되긴 싫었기에 그냥 질렀습니다.
올해 신춘 시즌이 되자 제 에너지가 작년만큼 충만한 게 아니고 오히려 너무 소진되어 감정이 바닥까지 추락하고 있었습니다. 내야 하나, 시 같은 시도 없는데...
시를 지었습니다. 몇 편 되지가 않아 가까스로 두 군데 응모했습니다. 도전했다는데 의미를 두었지만 사람 마음이 참 어지럽습니다. 작게나마 소망을 품어보는 건 괜찮지 않을까 혼자 삭혀봅니다.
연락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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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일까요.
"ㅇㅇ신문 ㅇㅇㅇㅇ장입니다."
"이번에 신춘문예 응모하셨죠?"
목이 마릅니다.
궁금하십니까?
궁금하시면 라이킷 눌러 주십시오.
저도 절단신공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