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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과 열망 사이

샤갈과 벨라가 머문 그 자리에 우리는 마주했다

by 은후

<상처난 보라>

사이버 연인


http://www.yaksannews.co.kr/news/363750


사랑을 사육하는 커서가 옆구리에 꽃처럼 달라붙어 있다


환상을 통과하는 남자는

적이 보호하는 곳에 플러그 한

그녀와는 샤갈과 벨라


상상으로도 뼈가 부딪는 연인들의 빼어난 스크롤이

뜨거운 문장으로 익어간다


조명이 밝은 곳을 꺼리는 첫 만남


빛나는 명찰은 사라지고 그의 눈매가 잠겨 있다


드르륵

몸서리치는 그의 손끝에서 그녀가 첫 입술을 지운다


홀로 암전 된 카페에서 샤갈과 벨라의

볼 붉어진 커피가 식고 있다





시 창작 노트



사랑은 언제나 육체의 감각과 감정의 교차점에서 생겨난다.


지금, 우리는 한 공간에 머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시는 디지털 공간에서 시작된 사랑이

어떻게 현실을 비껴가며 이루어지는지 상상했다.


샤갈과 벨라처럼 영혼의 동반자로 이어진 두 사람.

하지만 그들의 만남은 플러그 하나,

커서 하나로 연결된다.


빛나는 명찰, 즉 현실 세계에서의 정체성은 점점 흐려지고, 사이버 공간의 어둠 속에서 스크롤이라는

새로운 서사로 익어간다.


스크린 속 사랑은 낭만인가, 고립인가.

첫 입술조차 삭제할 수 있는 이 세계에서

사랑은 얼마나 진실할 수 있는가.


사랑은 더 이상 향이나 체온으로만 남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눈치채지 못할 속도로

빠르게 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처럼, 여전히 사랑하고자 한다.

사랑만이 우리를 결속하고 지켜낼 강한 힘은 없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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