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한 주를 보내고서
이번 주 내내 기분이 촥 가라앉아 뭘 해도 올라오지 않았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도 당최 모르겠고, 도통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아이가 아픈 것도 아니고, 생리 주기가 돌아온 것도 아닌데. 왜 이러지. 난 한참을 고심했다. 뭔가 가슴 한쪽이 답답했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터놓고도 싶었지만 그런다고 해서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걸 하기도 전에 알 것만 같았다.
그렇게 쳇바퀴 돌 듯,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다 문득 곧 이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2년의 계약 기간 중 절반을 채운 셈이다.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더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고, 물론 생각보다 더 쉽게 지나갔던 시간도 있었더랬다. 그 시간을 돌아보다, 내가 무언가를 놓친 것 같다고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
아이를 낳고 나는 줄곧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만을 찾았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외주로 받아서 하는 일, 재택이면서 건당으로 돈을 받는 부업, 그리고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번 나가는 아르바이트 자리 등이었다. 무조건 아이가 우선이었다. 잦은 야근과 밤샘 근무가 많은 남편의 직업 특성상, 내가 아이를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월급을 받는 일을 하게 되어, 한편으로는 아직 사회인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다. 일을 시작한다고 해서 집안일과 아이에게 소홀하지 않겠다는 결의에 찬 다짐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한 시간이 걸리는 퇴근 후에도 녹초가 된 몸을 일으켜 가장 먼저 세탁기를 돌리고, 3첩(?) 반상을 차리고, 아이를 씻기고, 잠자기 전 꼬박꼬박 책도 읽어 주었다. 그 무엇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 더 움켜쥐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 나는 결국 인정해야 했다.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은 저녁 밥상이었다. 하루 한 끼는 내 손으로 해 먹이고 싶었지만, 주말에 일주일치 장을 봐서 매일 저녁을 하는 일이 버거워진 것은 한 달이 채 걸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아이는 유치원에서 저녁을 먹고 오게 되었고, 나는 금요일에만 장을 봤다. 그리고 남편이 늦는 날이면 나는 그냥 라면으로 저녁을 때웠다. 남편이 저녁을 먹고 온다는 소식이 점점 반가워졌음을 고백한다.
그다음에 포기하게 된 것은 빨래였다. 딸아이의 유치원은 원복과 체육복을 번갈아 입는데, 매일 빨래를 하던 시절엔 사복 걱정을 하지 않아 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겨울이 되고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에 저녁에 세탁기를 돌릴 수 없게 되자, 나는 그냥 빨지 않고 다시 입히거나 정 안되면 아침에 빨래를 돌리고 출근했다. 하루종일 통돌이 세탁기통에 들어있을 수밖에 없어 주름이 가득 진 빨랫감은 건조기로 달랠 수밖에.
그다음 포기한 것은, 엄마표 학습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단 둘이 아이와 학습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시간을 좋아해서 꽤 즐기고 있었다.(아이도 그랬다고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지친 엄마가 ‘이 학습시간’을 ‘절대 놓칠 수 없는 무엇’으로 정의하자, 아이가 몸을 조금만 배배 꼬아도 짜증이 났다. 자꾸만 화를 내는 내 모습에 진저리가 난 나는, 과감하게 이것도 때려치웠다.
그 외에도 내가 포기한 것들은 더 있었다. 한 번씩은 할 수 있었던 남편과의 데이트, 자주는 아니었지만 아이 친구 엄마와 가질 수 있었던 티타임, 혼자 있는 집에서 막 건조기에서 꺼낸 빨래를 개며 보던 드라마 등. 지난 1년 간, 내가 포기한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난 이제 더 이상은 포기할 게 없는데. 왜 그런데도 계속 힘에 부치는 것만 같지? 그 막막함이 지난주 나를 힘들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일은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이론상으로는 알겠다. 집에서만 일하던 시절, 남편은 내가 집에 있으니 아이가 아파도 내가 일하면서 보면 된다는 식이었다. 이 부분에서만 본다면 남편은 참 많이 달라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당장 달려가지 못하니, 남편도 하나의 역할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이 일터가 되지 않으면, 집에서 아이에게만 집중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틀렸다. 회사에 있는 동안 집안일은 하나도 할 수 없으니, 그 집은 여전히 나에게 ‘집안일 일터’였기 때문이다.
불혹이 되면 더 이상은 그 어떤 것에도 현혹되지 않고 평안할 줄 알았는데, 나는 아직도 무엇이 옳은 정답인지 모른 채 방황한다. 심지어 무슨 일을 해도 하나를 깊이 파지 못하고, 자기 합리화에 빠져 허우적댄다. 부끄럽게도 누군가 ‘이게 맞으니, 계속 이렇게 하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시간과 이 이후의 시간. 나는 엄마로서, 아내로서, 여자로서,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