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해결 과제 - 나의, 혹은 우리의 한 때
그리고 또 한참 시간은 흘렀다. 그동안 나에게도 몇 번의 소개팅과 데이트라 부를 수 있을 만한 만남이 있기도 했지만 마음이 끌리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너를 만나야겠다. 만나서 여자친구랑 회복하고 너무 잘 지낸다는 얘기라도 들어야겠다. 이번에야말로 내 마음을 확실하게 죽여놓으리라 다짐하며 너에게 ‘오랜만에 밥이나 먹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너는 가고 싶은 식당이 있다며 흔쾌히 수락했다. 그 가고 싶은 식당이 술집이라는 것이 내 다짐을 흔들어놨다. 혹시 헤어졌나?
약간은 떨리는 마음을 숨기며 너와의 약속 날을 맞았다.
“근데 하나 물어보자, 너 헤어졌어?”
- “갑자기 그건 왜?”
“아니 너 여자친구 있을 때는 나랑 술 안 마시잖아. 약속 장소를 여기로 잡길래 혹시나 해서”
- “응 헤어진 지 한 달 정도 됐나? 저번에 말했던 거랑 비슷한 이유지 뭐.”
“그랬구나.. 몰랐네. 지금은 좀 괜찮아?”
- “응 정말 괜찮아. 그냥 이것저것 바쁘게 지내고 있어. 그리고 여자친구 있었어도 네가 술 마시자면 마셨을 거야. 여자친구한테도 네 얘기했었거든.”
“응?? 내 얘기를? 뭐라고 했는데?”
- “너는 특별한 친구라고. 여사친을 제한해도 너는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우웩. 여자친구가 개 싫어했을 것 같은데.”
웃기만 하는 너를 보며 마음은 더 복잡해져 갔다. 이게 무슨 뜻일까. 아무튼 지금 만나는 사람이 없다는 거지. 너의 연애가 끝나면 어찌 됐든 내 마음을 전해 보기로 했었는데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네. 오늘 죽이려 했던 마음인데, 사람 일은 참 알 수 없다.
그날의 술자리는 언제나처럼 즐거웠다. 새로 만나는 사람은 없냐는 너의 말에 나는 소개팅은 안 맞는 것 같다고, 편하게 알고 지내던 사람이 좋다고 말했다. 연애에 있어서는 유달리 더 소심해지는 I형 인간의 나름의 최선을 다한 플러팅이었다.
“이걸 왜 네가 계산해. 얼마 나왔어 내가 절반 보내줄게”
- “아냐 네가 우리 동네까지 와줬는데, 내가 오고 싶다고 한 식당도 같이 와주고. 오랜만에 재미있는 시간 보내게 해 주고. 당연히 내가 사야지”
“그래도….”
- “정 그러면 다음에 만날 때 네가 맛있는 거 사줘. 다음엔 내가 너희 동네로 갈게”
“우리 동네에 맛집이라곤 우리 집 앞 타코야끼집 밖에 없는 걸. 누굴 부를 수가 없는 동네인데”
- “음.. 그럼 너희 집에 놀러 가면 되지”
순간 머리가 굳었다. 집에 오겠다고? 진심인가. 내가 아무리 플러팅을 모르는 바보기로서니 이건 그린라이트가 맞지 않나…? 예전의 나였다면 뒷걸음질 쳤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어찌 됐든 너를 향해 가보기로 결심한 터였다.
“그래 그럼. 우리 집에 놀러 와. 언제 올래?”
- “음.. 다음 주는 좀 바쁠 것 같고 다다음 주쯤? 천천히 날짜 잡아보자. 잘 들어가!”
그게 너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