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해결 과제 - 나의, 혹은 우리의 한 때
우리 집에 놀러 오겠다던 너는 다음 약속을 잡자는 내 연락에 답하지 않았다. 가끔 이렇게 답장이 느릴 때가 있었으니 그러려니 했다. 안읽씹이 3일쯤 지났을 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싶어 전화를 했다. 너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부재중 전화의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너는 확실히 나를 피하고 있었다. 너에게 생긴 ‘무슨 일’은 나였다.
그날의 만남에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 며칠을 곱씹었다. 이유를 모르겠어서 미칠 것 같았다. 이유를 꼭 답해줘야 하는 사이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 화가 났다. 덥석 집에 오라는 내가 부담스러웠을까? 하지만 네가 먼저 가겠다고 했잖아. 설령 그렇더라도 그냥 다음 약속을 적당히 둘러대고 미뤘다면 잘 알아듣고 물러날 수 있었는데. 나 그렇게 멍청한 여자 아닌데.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차치하고서라도, 특별한 친구라며. 친구한테도 이런 식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메시지도 전화도 받지 않고 별안간 사라져 버린 네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혼란스럽고, 열받고, 슬프기도 한 날들이 이어졌다. 이유는 모르지만 끝이구나. 이런 식으로 정리해야 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겨우 시작하기로 마음먹자마자 끊어져버린 내 마음이 안쓰러웠다.
두 달이 더 흐르고, 나는 소개팅에 성공해서 남자친구를 만났다. 남자친구는 좋은 사람이었다. 너보다 나에게 더 잘 맞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머리로는. 문득문득 네가 떠오를 때가 있었다. 특히 가족과 트러블이 있을 때면 그랬다. 너는 이해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떠나간 너에 대한 복잡한 감정과 현 남자친구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올라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사귀지도 않은 사람의 영향력이 이렇게나 강해도 되나. 내 마음도 이 상황도 그냥 웃겼다.
웃기고 서글픈 시간도 어찌어찌 흘러가 또 4개월이 지났다. 너와의 연락이 끊어진 지 6개월째, 별생각 없이 SNS에 올린 사진에 너의 메시지가 왔다.
이 사진 잘 나왔네
두 눈을 의심했다. 미친놈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오는 연락에 분해서 돌아버릴 것 같은데 또 그렇게 닦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는 것이 사실이라.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이라는 걸 알면서도 신경이 쓰이는 나 자신이 싫었다. 그 후로도 너는 뜬금없이 인스타그램에 '좋아요'를 누르고 반응을 해왔다. 마음이 복잡한 날에는 그 연락을 무시하고, 조금 덤덤히 대할 수 있을 것 같은 날에는 무던한 친구처럼 짧은 답장을 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 차단과 차단 해제를 몇 번이나 오갔는지 모르겠을 때쯤, 이제는 정말 괜찮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이해할 수 없는 마음... 드디어 바닥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