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겹겹이 쌓인 나의 비겁들. 안녕.
미해결 과제 - 나의, 혹은 우리의 한 때
비장애형제라는 공통점으로 엮이지 않았다면 친해질 계기도 없었을 것 같고, 친해졌더라도 손을 잡았을 때 은근슬쩍 고백해버렸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가볍게 지나쳐 보내고 싶지 않았다. 쉽게 찾을 수 없던 공통점 하나에 마음을 너무 크게 줘버렸나 보다. 사실 우리는 차이점이 더 많지만 그 공통점 하나가 나에게 주는 의미가 컸는데. 너는 아니라는 게 좀 쓰다. 너한테는 내가 그냥 가볍게 플러팅 할 만한 친구 정도일 수도 있겠다고 머리로는 생각했는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나한테 너는 그것보다 소중한 사람이라서. 장애를 가진 가족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이 관계가 너무 소중해서 어떤 식으로든 오래오래 곁에 두고 싶었다. 모순적이게도 그때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한 발짝 먼 관계로 오래오래 있겠다고 마음먹은 그때, 손을 잡고 여름밤을 걸었지만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그때.
지금 느끼는 감정은 너에 대한 미련이라기보다는 겹겹이 쌓인 나의 비겁들에 대한 후회일지도 모르겠다. 참 여러 가지 핑계로 너를 향한 호감으로부터 도망치던 날들. 나의 용기 없음을, 너의 알 수 없는 마음을 애써 다른 이유로 포장하던 시간들. 내가 조금 더 내 감정을 똑바로 마주했다면 지금 나는, 우리는 달랐을까? 너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전부 나의 착각이었는지, 어느 정도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했는지. 가만 보면 너는 안 될 때는 편하게 다가오고 말로는 내가 특별하다 하면서 막상 '우리'가 가능해지는 결정적인 한 걸음 앞에서는 피해왔다. 너의 입장이 궁금하기도 하고 동시에 그 모든 게 이제와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어차피 아닌 건데. 뭐가 됐든 이 감정을 털어내야 더 가볍고 산뜻한 마음으로 지금의 연애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한 글이다. 이 글이 너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지, 영원히 숨기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지난날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지금 추억할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을 읽은 적 있다. 사랑이었는지도 확실치 않지만 아무튼 우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지금 이렇게 곱씹을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고, 나의 모든 비겁들을 반성하고 서로에게 더 좋은 사랑을 찾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하려 한다.
어제는 너의 생일이었고 나는 생일을 핑계로 연락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렇지만 생일을 축하했어. 잘 지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