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혜은 Oct 18. 2022

사랑이 왜 죄책감이 될까

하여튼 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아는 사람들!

    "내가 받고 싶지도 않은 호의를 누군가가 멋대로 베풀 때 그 '호의'에 응당한 반응을 하지 않았다고 죄책감 느끼지 않아도 돼. 하여튼 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아는 사람들."


    싫어하는 사람이 부담스러운 선물을 줬다고, 그게 마음에 큰 짐이 된다고 투덜댔을 때 S가 이렇게 말해줬었다. 덕분에 그 순간을 넘겼어.


    그런데 그 호의를 주는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일 때, 호의의 모양이 완연한 사랑일 때는 그게 원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기가 너무 어렵다.


    할머니가 어마어마한 양의 반찬을 보냈어. 제발 조금만 보내라고, 나는 혼자고 집에서 하루에  끼 밖에 안 먹는다고 빌다시피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지. 커다란 박스와 빼곡한 내용물들을 보면서 머리가 아팠어. 이걸 어느 세월에 다 먹지. 이게 다 들어가는 반찬통이 지금 나한테 있기는 한가. 그렇지만 그대로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한숨을 푹푹 쉬면서 정리를 시작했어. 하나하나 정성이 들어 있었고 당연히 맛도 있었어. 4분의 1 정도의 양이었다면 사랑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몰라.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가득 찬 1.


    저 사랑을 냉장고 한 구석에 썩혀 버리는 것도, 먹어 치우며 진절머리를 내는 것도, 어느 쪽도 죄스러움이 된다. 사랑이 왜 죄책감이 될까.


    가족은 정말 너무 어려워.

이전 09화 8. 겹겹이 쌓인 나의 비겁들. 안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