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어렵고 적당히 잘하고 싶은
졸업 시즌이 다가온다. 출근길에 문득 내가 첫 학교에 아직 있었다면 나와 함께 그 학교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던 1학년의 졸업식을 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상담교사 동기들을 만났었는데, 여전히 학교를 지키는 모습이 존경스러웠고 학생들을 졸업시키며 건강한 종결을 하는 경험이 부러웠다. 꼭 무사히 졸업을 시키고 싶던 어떤 학생이 떠오르기도 했다. 연차도 아직 하나밖에 없는 주제에 그 아이의 졸업식에 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상담교사'라는 것이 나의 정체성에 차지하는 부분이 크지 않아서 떠날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너무 커서 떠나고 싶었을까 싶기도 하다. 돌아가고 싶은 건 절대 아니지만 그냥 센치한 기분이 된다. 다른 상담선생님들과의 대화에서, 수퍼비전에서, 내가 했던 게 그렇게 최악은 아니었다는 걸, 잘 한 부분도 있다는 걸 알게 될 때마다 눈물이 났었다. 그 일이 너무 싫고 어려웠지만 너무 중요하게 여겼고 잘하고 싶기도 했구나. 그래서 너무 힘들었구나.
회사에서 실수를 했다. 기초 자료를 잘못 선택해서 엉뚱한 내용을 회신했다. 자료를 수합해서 제출해야 하는 분도 일을 여러 번 다시 하게 해서 너무 죄송했다. 나의 꼼꼼하지 못함과 어처구니없는 바보스러움에 자괴감이 들었다. 전 회사의 동기들은 오늘 채용형 인턴 기간을 끝내고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다 같이 임용식에서 기뻐하는 사진을 보니 나만 저 자리에 없는 게 묘하게 느껴졌다. 3개월 간의 인턴 생활을 끝냈으니 이제 나름대로 업무에 적응도 많이 됐겠지 싶어서 부러운 마음이었다. 나는 아직 2개월의 시보 기간이 남아있고 오늘 대차게 실수도 한 바보인데 말이다. 그러다가 아니, 차장에 팀장까지 거쳐서 나간 자료인데 다들 못 찾았으면 내가 바보라서만은 아니지!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일차적으로 자료를 잘못 선택한 내 잘못이 가장 크다는 생각에 마음이 쪼그라들기도 했다.
몇 시간을 쪼그라들어 있다가 다음부터는 근거 자료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업무를 수행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자체 반성 타임을 가졌다. 그리고 약간의 미안함과 몇 번의 사과로 한 번 더 기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업무 상 실수가 나의 인격적인 부족함에 관한 의심과 원가족과의 관계에 대한 파헤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에서 이직의 보람을 느꼈다. 적당히 어렵고 적당히 잘하고 싶은 적당한 자리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누구의 인생도 망치지 않았고 누구도 죽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가 대단히 못나고 어딘가 뒤틀리거나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서류를 꼼꼼하게 확인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실수에 대해 여전히 마음이 약간 무겁기는 하지만 술을 마시며 울어야 할 정도는 아니다. 머그컵에 따뜻한 레몬차를 한 잔 담아 마시는 정도로, 남극해의 바람이 호주의 절벽을 깎는 세상임을 상기하는 정도로 살짝 무게를 덜 수 있는 실수라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를 생각한다. 좋은 마음으로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은 실수를 하지 않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