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일기 쓰기를 건너뛰고… 벌써 마지막 날이라니! 야라 강변에 앉아서 일기를 쓰고 있다. 서울에 돌아가면 한강공원에 조금 더 자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에서 발견하는 것들을 생활에서도 발견하며 지내고 싶다. 한편, 내가 여행에서 느끼는 자유는 ‘멀리 왔다’는 사실 자체에서 오는 거라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느낄 수가 없나 싶기도 하고. 모르겠다. 오늘은 원래 가려던 와이너리 투어가 갑자기 취소돼서 더 생겨버린 시티에서의 하루인데 제법 만족스러웠다. 스몰배치 카페가 너무너무 좋았다. 감동이 있는 커피였다…. 공원에서 그네를 타며 책을 읽은 것도, 한 아이가 그네 타는 법을 배우는 걸 지켜보게 된 행운도 좋았다. 뭐든 새롭게 배우는 것은 싫다는 아이에게 어른이 되는 방법은 배우는 것뿐이라던 어머니. 배우려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지금 그네 타는 법을 배우는 것뿐 아니라 나중에 차를 운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까지도 전부 지금 잘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그녀의 말이 참 좋았다. 그 말 끝에 ‘엄마는 나한테 운전 가르쳐준 적 없잖아’, ‘때가 되면 가르쳐줄 거야-‘ 하는 대화도 귀여웠다.
모자의 대화를 엿들으며 이슬아 작가의 ‘끝내주는 인생’을 마저 읽었다. 공이 날아오는 게 무서운 일루수처럼 학생이 상담하러 오는 게 무서운 상담선생님인 나. 내 일이 감당이 안 되는 나.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나. 그렇지만 어쨌든 살아가고 있는 나다.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순서지만 그레이트 오션 로드 투어 얘기를 해야겠다. ‘탁 트인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며 아름다운 해변을 즐겨요’인 줄 알았던 투어는 ‘남극해의 기상을 느끼러 대륙의 끝으로 떠나자 용사여’였고, 너무너무 추워서 덜덜 떠는 와중에 정말로, 정말로 멋졌다. 깁슨스 스텝으로 내려가니 거대한 절벽 앞으로 남극해의 강풍과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남극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호주 대륙의 바위를 깎고 있는 세상에 인간이 짧게 하고 가는 일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할 만큼 하면 되지. 뭘 그리 아등바등해. 남극의 바람과 파도가 호주의 바위를 깎는 세상에서. ‘지구는 괜찮아, 인간이 X 됐지.’ 하던 환경보호 카피도 왠지 모르게 떠올랐다. 뭐가 어때.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될 거다. 인간이 하는 일 중에, 할 수 있는 일 중에 그렇게 큰 일 이랄게 없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또 그런가. 힘들었던 순간마다 죽었다면 내 인생에 호주에서 바람을 맞을 기회 같은 건 없었을 텐데. 며칠을, 몇 달을, 몇 년을 더 살게 하는 건,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게 하는 건, 꽤나 커다랗고 의미 있는 일 아닐까. 아무래도 나한테는 버거운.
호주를 간 것은 학교에서 교육지원청으로의 전근이 확정된 때였다. 당시 나는 아직 전근 시점이 아니었고, 원한다면 다른 학교가 아니라 교육지원청으로만 전근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전근 신청 전 여러 고민을 했지만 결정적이었던 것은 이 학교에 더 있을 수가 없어서였다. 객관적으로 어려운 학교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힘들었다. 이런 순한 맛 학교에서도 이만큼 힘든데, 정말 어려운 학교를, 힘든 학생을 만나면 그때는 어떡하지. 내가 과연 이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도망치듯 학교를 나왔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지만 다행히 교육지원청은 학교보다 훨씬 잘 맞았다. 모든 상담이 예약제로 진행된다는 점, 업무에 대해 함께 논의할 사람이 옆에 있다는 점이 학교에서는 느낄 수 없던 안정감을 주었다. 전근 전 걱정했던 것은 방학이 없는 부분이었다. 지금까지의 평생에 방학이라는 기간이 주어졌었는데, 정해진 재충전의 기간이 없는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 조금은 불안했다. 하지만 업무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드니 하루하루가 학교에서만큼 힘들지 않았다. 온 기력을 소진하고 퇴근하면 쓰러지듯 잠드는 날이 학교에서는 종종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일정을 맞춰 사용하는 연차의 즐거움도 있었다. 이왕 방학 없는 삶에 익숙해졌다면 이참에 아예 교직을 떠나보자고 생각했고 이직을 결심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각오했던 기간보다 훨씬 빠른 시일 내에 이직에 성공했다.
다른 글에서도 썼었지만, 이직 결과는 아주 만족스럽다. 업무 상의 실수가 나라는 사람의 인간성과 개인적 역사에 대한 반추로 이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 주변의 아무도 죽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히 좋다. 호주 대륙의 압도적인 풍경을 보며 생업의 버거움을 떠올리던 내가 안쓰럽다. 하지만 그 시간을 보내준 덕분에 학교를 무사히 졸업한 아이가 있고, 지금의 나도 여기에 있다. 조금만 더 견디자고, 지금은 너무 무력하게 느껴지겠지만 네가 할 수 있는 게 점점 늘어날 거라고,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늘어나고 삶은 점점 나아질 거라고. 언젠가 '아 그때 안 죽고 살아있길 잘했다'라고 생각하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는 것만은 선생님이 확실히 말해줄 수 있다고 했던 적이 있다. 언제 다시 호주만큼 멀리, 길게 여행을 갈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지금의 시간을 잘 쌓아나가다 보면 또 어딘가에서 대자연의 장엄함을 느끼며 살아있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날이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