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묻은 작은 티끌을 사랑으로 흐릴 수 있게 될까
하옥련 씨. 옥련리에서 태어나 열여덟에 시집간 하옥련 씨. 글 쓰고 그림 그리던 남편 대신 시어른 모시고 밭일하며 품 팔아가며 4남매 키워낸 고생을 말로는 다 못한다고, 다 늙었어도 지금이 제일 좋다는 하옥련 씨. 내 글 속의 유일한 본명(本名)인 하옥련 씨. (하옥련 씨는 인터넷에 자기 이름을 검색하지 않을 테니까.)
서울에서 뭐 하느라 집에 한번 올 시간이 없냐는 말에 이번 주말에는 시험을 치러 간다고 했다. 학교도 졸업했으면서 무슨 시험이냐는 말에 회사 들어가려는 시험을 본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휴직하고 다른 데 갔다 올 수 있는 거냐고 묻는 하옥련 씨.
"나는 이 일이 싫어. 관둘 거야."
- "하이고 되도 않는 소리 하네. 가서 또 하기 싫으면 어떡할래? 이 싫증쟁이야."
남편은 평생 글 쓰고 그림 그렸고, 딸은 시집가서 사위와 함께 평생 소를 키웠고, 아들 셋과 며느리 셋은 평생 공무원으로 일한 하옥련 씨. 하옥련 씨가 보기에는 3년도 못 채우고 직장을 바꾸겠다는 손녀가 싫증쟁이일 수 있겠다,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마음에는 상처가 됐다. 나라고 이러고 싶은 줄 알아.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온 직장인데. 공부하면서, 면접 준비하면서 얼마나 울고 떨었는데. 나도 그냥 정착하고 싶다고. 취업준비 같은 거 더 하고 싶지 않다고. 그런데 안 되겠는 걸 어떡해. 이 일을 계속하면 공부할 때 보다 면접 볼 때 보다 더 많이 울어야 될 것 같아서 힘들게 결정한 건데. 퇴근 후에 공고를 찾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자격증을 공부하고 필기시험을 준비하는 게 나라고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닌데. 왈칵 올라오는 눈물을 꾹 누르며 그때는 또 다른 거 하면 된다고 쏘아붙였다. 인터넷은 못하지만 세상 지혜를 많이 알고 있는 하옥련 씨가 정곡을 찔렀기 때문에 유난히 아픈 것일 지도 모른다. 직무를 두 번 세 번 바꾸기에는 내 나이가 어리지 않다. 이다음에는 마음을 붙여야 할 것이다. 다음번 일에서도 너무 힘들면 그때는 어쩌지? 그동안 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선명한 불안이 있다.
하옥련 씨는 이렇게 가끔 내 가슴을 후벼 판다. 언니와 나를 비교하며 언니를 안쓰러워할 때도 그랬고, 싹싹한 남동생과 나를 비교할 때도 그랬다. '너 가만히 앉아 하는 일에 그 정도면 많이 받는거지 뭘 얼마나 욕심내냐' 할 때도 그렇고, '집에 한번 와서 쉬다 가라'할 때도 그렇다. 뭐가 쉬는 건데 대체. 주말 이틀을 꼬박 바쳐 기차를 한참 타고, 가서는 답답한 마음에 화를 내지 않기 위해 어금니를 몇 번이고 깨물어야 하는 데 뭐가 쉬는 거야 그게. 나는 이것조차 말을 못 하겠는데 '가족끼리는 좋은 얘기 말고 힘든 얘기도 하고 그러는 거다'라며 마음을 터놓기를 바라는 점까지도 그렇다.
하옥련 씨가 바리바리 담그고 싸서 서울까지 부친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여 먹고, 같이 들어있던 복숭아로 입가심까지 한 후에 하옥련 씨에게 너무너무 서운하다는 글을 쓴다. 하옥련 씨가 주는 사랑에 비해 내 사랑이 너무 모자란 걸 알아서 또 눈물이 난다. 하옥련 씨가 평생 나에게 건넨 사랑에 비하면 '싫증쟁이야'라는 한 마디는 참 작은데. 그것 하나 상계하지 못하는 내 비좁은 마음과 이기적인 계산이 싫다. 결국 내 마음의 문제로 돌아온다. 하옥련 씨 나이만큼 살다 보면 사랑에 묻은 작은 티끌을 사랑으로 흐릴 수 있게 될까. 그랬으면 좋겠다. 군데군데 흐린 점을 사랑의 무늬로 생각하며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