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첫 출근을 앞둔 날이 되었다. 합정 길거리에서 울면서 상담을 그만둬야겠다 다짐했던 날로부터 약 1년,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시작한 지 3개월 정도만에예상보다 빠르게 이루어진 이직과 급박한 면직 절차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면직을 했다는 실감도 나지 않았다. 신입사원 연수도 그냥 체험형 캠프고, 이 캠프가 끝나면 다시 학생들을 만나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3주 간의 연수를 끝내고 출근 전 이틀의 여유 시간이 주어졌다. 방학도 아닌 평일 오후에 카페에 와 있으니 정말 직장을 관뒀구나 싶다.카페에 오는 길에 근처 초등학생들이 하교하는 모습을 봤다. 이제 다시는 초등학생들이랑, 어머님들이랑 상담 안 해도 된다고? 진짜로?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의 순간에 민감히 알아차리는 누군가도 있겠지만, 나는 실감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한사람인가 보다. 순간이 아니라 과정으로 실감'해나간다'라고 해야겠다. 정식 출근이 시작된 후에도 계속해서 실감해 나가야 할 것 같다.
다시 상담 안 해도 되면 세상 시원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첫 직장이라고, 떠나니 아쉬운 마음도 든다. 그간 만났던 선생님들도 떠오르고, 남겨두고 온 아이들도 종종 생각이 난다. 좋든 나쁘든 많은 것을 느끼게 한 시간들이었다.
임용 기간 동안에는 내가 얼마나 불확실성에 취약한 사람인지,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견디고 이뤄낸 사람인지 느꼈다. 도서관이 문을 닫는 시간에 나와서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 서글픈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수능을 준비하던 시절의 내가, 시험기간마다 학과 건물 로비에서 공부하던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떠올리면 이것도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고서 집 가서 불안감에 울다 잠들기도 했지만... 과거의 내가 나를 지탱해 주는 날이 많았다.이번 취업준비에서는 임용을 치러낸 내가 나를 도와줬다. 한 달 반을 갈아 넣어 준비한 임용 면접이 다른 형태의 면접에서도 기반이 되었다. 면접 준비 기간 동안 '이렇게 열심히 해서 떨어지면 공부한 걸 어디다 쓰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는데, (붙었어서 다행이지만) 떨어졌어도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었겠구나 싶었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 어떤 경험의 조각이 필요할지 모르니 앞으로도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야겠다.
상담교사로 근무하면서는 언니에 대해 떠올리는 일이 많았다. 미숙한 누군가를 돕는 역할은 너무나 익숙했는데, 익숙하다고 해서 편안한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양한 방면에서 미숙한 아이들에게 언니가 겹쳐 보였고, 특수학생들과 장애를 대하는 일반학생들의 정제되지 않은 태도를 보며 내가 모르는 언니의 학교생활은 어땠을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면 마음이 슬펐다. 그렇게 슬퍼하면서도 언니와 함께하는 생활, 언니에게서 오는 전화는 귀찮아하는 내가 위선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역전이도 심했다. 나는 지적장애가 있는 언니가 있어. 너는 그렇지도 않으면서 대체 뭘 그렇게 억울해하고 힘들어하는데? 상담자적 자아에 아주 살짝만 힘이 빠져도 이런 못난 생각이 올라왔다. 언니가 없었다면 이런 생각은 안 들었을까 고민하다가 또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싫어지는 악순환이었다. 나는 어쩌다 상담을 직업으로 택해서 이런 얘기들을 듣고 이렇게 나를 파헤쳐야 할까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애초에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부터 언니를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으니 그런 생각의 끝에는 언제나 언니가 있었다.
이렇게 고민하고 힘들어하면서도 가족한테는 말을 안 했다. 힘들다고 말하는 것 자체도 싫고 그렇게 말하면 괜히 자주 걸려올 전화도 싫고 힘든 이유를 정확히 말하자면 언니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러기도 싫고 언니 얘기를 안 하자니 그냥 출근하기 싫다고 징징대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싫었다. 그냥 전부 다 싫었다. 이직을 준비하는 것도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왜 관두려고 하냐'로 시작될 질문들에 답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덜컥 찾아온 합격 소식이 반갑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했다. 상담 탈출의 기회와 전국 순환의 단점 사이에서 또 한 번 치열한 고민이 있었고, 이걸 말하면 과연 뭐라고 할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관두지 말라고 하면 한 판 붙을 각오로 내려간 본가에서 대략 축하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영 떨떠름했다. 우리 엄마아빠보다 친구들과 친구들의 부모님께 더 열띤 반응을 얻은 이직이었다. 이것보다 더 많은 생각들을 했던 것 같은데 아직 글로 옮길 만큼 내 안에서 정리되지 못했다.
나는 바라던 대로 마음이 장애물이 되지 않는 일을 하게 될까? 상담교사를 관두고 회사원이 되는 것이 과연 좋은 선택이었을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으니 결정한 바를 정답으로 믿고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겠다. 상담교사로서의 글은 여기서 끝나지만 계속해서 글을 쓸 거다. 앞으로는 직장에서의 에피소드로 인해 강제로 하게 되는 자아성찰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내가 필요로 하는 자아성찰로 나의 속도에 맞게 살피고 적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