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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Apr 12. 2024

Day12 : 한나절

Day 12



    동네 뒷산이나 어린이 공원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던 몽마르뜨 언덕이 생각보다 크고 예뻤고 사크레쾨르 성당도 정말 멋졌다! 성당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했다ㅠㅠ 여기서 할머니 드릴 묵주를 하나 샀다. 엄마아빠 기념품은 안 챙겨도 할머니 기념품은 챙겨야 한다. 잔디밭과 계단이 있는 쪽으로 내려오자 버스킹과 단체관광객이 많았고 악명 높은 몽마르뜨 사인단, 기념품 판매 상인들도 많았다. 사인 권유하던 여자를 겨우 지나쳤다. 혼자 왔으면 좀 무서웠을지도. 좀 더 밑쪽으로 내려오니 괜찮았다. 유럽은 겨울에도 잔디가 푸른 게 신기했다. 우리나라 잔디랑 품종이 다른가? 정말 누런 빛 하나도 없이 생생한 초록색이었다. 


    엄청 맛있었던 오리고기와 조금 짰던 샐러드, 그리고 실패작이었던 파스타... 를 먹고 나니 시간이 벌써 세시였다. 오르세는 여섯 시에 닫고 몽마르뜨에서 오르세 까지는 삼십 분이 넘게 걸렸다. 오르세를 두 시간 만에 후다닥 보고 나오기는 싫었다. 아침에 좀 더 일찍 나왔으면 오늘 일정이 틀어지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근데 이미 틀어진 거 뭐 어쩌겠냐고 간신히 마음먹고.. 오르세를 마지막 날에 보고 노트르담 대성당을 오늘 가기로 했다. ‘오늘 하루 종일 성당만 보네’라는 동생의 말에 이게 누구 덕분인데 싶어서 조금 평정심을 잃을 뻔했지만... 오리고기가 달달해서 잘 참았다.


    예상치 못하게 계획이 틀어져서 기분이 좀 가라앉았었는데 노트르담 대성당에 가니 또 참 예뻐서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틈틈이 소나기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는데 성당 앞에 앉아있을 때 딱 맞춰 날이 개어서 정말 예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구름이 흘러가는 게 그림 같았다. 성당 내부도 멋졌다. 유럽 성당은 어딜 가나 다 멋진 것 같다.



    성당 안을 둘러보고 나오니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급한 대로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비를 피했다. 비가 조금 그쳤을 때쯤 다시 나와서 주변을 산책하다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서점을 발견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 싶어서 검색해 봤는데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진 서점이라고 한다. 가게 안에 들어갔는데 정말 너무너무너무 멋졌다. 렐루 서점이랑은 또 다른 느낌. 더 작고 따뜻한 헌책방 느낌이었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앉아있고 싶었다.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읽어본 적 없지만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봤던 작가들이 살아 숨 쉬었던 공간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어서 기념품을 사 오지 않을 수 없었다......ㅎ 이참에 노인과 바다를 원서로 읽어볼까 하다가 렐루 서점에서 산 해리포터를 읽어야 함을 깨닫고 에코백만 사 왔다. 실용적이니까 괜찮다고 합리화해 본다. 하나 크게 아쉬운 점은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 고양이를 깨우지 마세요 같은 메모는 봤는데 막상 고양이를 못 봤다는 거다.





    파리는 오리고기가 맛있는 것 같다. 저 날 먹은 오리고기 요리가 정말 맛있었어서 다음번 파리 방문 때에도 오리고기 요리를 먹었다. 몽마르뜨 쪽을 찾아갈 일정은 아니어서 시내의 다른 식당에서 먹었는데, 그곳의 오리고기도 아주 맛있었던 기억이다. 고기에 꿀을 찍어 먹는 건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의외로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2019년의 어느 날 노트르담 대성당에 불이 났다는 소식에 마음이 덜컹하니 아팠다. 짧은 한나절의 추억만으로도 이런 감정이 드는데, 평생을 그 오래된 아름다운 성당과 함께해 온 사람들은 얼마나 슬프고 허전할까. 초등학생이던 시절 숭례문이 불타던 뉴스를 집에서 지켜보던 것도 생각이 났다.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불이 언제 꺼질까 초조한 마음은 한참이나 지나서야 들었었던 것 같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이 더 오래오래 제 자리를 지켜주면 좋겠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산 에코백은 2년간 잘 쓰다가 2019년 교환학생 귀국길에 포스트엔엘의 택배분실로 영원히 내 손을 떠났다. 지구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지, 포스트엔엘의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파리 관광 기념품으로 사 오는 사람도 많고, 인터넷에 유통되는 유사 상품도 많아서 길거리에서 심심찮게 보이는데 길을 걷다 그 에코백을 보고 부들부들 대지 않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노인과 바다는 '언젠가 꼭 읽어봐야지' 리스트에 자리 잡은 지 오래인데 아직도 읽지 않았다. 고전명작은 뭔가 전혀 모르면서도 대략 아는 느낌이라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올해는 꼭.... 읽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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