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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Mar 21. 2024

Day9 & Day10 : 드디어, 몽생미셸

Day 9


    렌 역에서 몽생미셸 가는 버스를 타는 순간부터 너무 들떴다. 드디어 몽생미셸에 간다. 언젠가 야경 사진 한 장을 보고 꼭 가겠다고 마음먹었던 곳에 직접 간다. 한 시간을 달려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이번 여행의 첫 호텔 숙박이었다. 돈이 좋은 줄은 알았는데 너무 최곤데...? 커피 한 잔 마시고 셔틀버스를 타러 나갔다. 버스 창밖으로 멀리 몽생미셸이 보이는데 주책맞게 눈물이 찔끔 났다. 만원 버스가 아니었다면 울었을 거야... 정말. 정말. 예뻤다. 



    인포메이션 센터에는 놀랍게도 한국어 지도가 있었고 신나서 직원이랑 잠깐 얘기했다. 그래봤자 할 수 있는 말은 Surprising! 밖에 없었지만.... 먼저 점심을 먹고 수도원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가려던 크레페 가게는 문을 닫았고 섬에서는 데이터도 잘 안 터져서 그냥 옆의 다른 가게에 들어가야 했다ㅠ 오믈렛과 양고기가 유명하다고 듣고 가서 엄청 고민하다가 오믈렛을 주문했다. 동행이 있었으면 둘 다 맛볼 수 있었을 텐데... 생각하면서. 


    잠시 후 오믈렛이 나왔고, 오. 조금 당황스러운 비주얼이었다. 두근두근 반으로 갈라봤는데 웬걸. 뭐 베이컨이나 양파나... 뭐라도 들어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계란뿐이었다ㅋㅋㅋㅋㅋ 정말... 당황했다.... 2만 원짜리 계란찜이라니... 맛있고, 폭신폭신한.. 커다란.. 2만 원짜리 계란찜.... 계란찜의 충격이 영 가시질 않아서 화이트 와인을 추가로 주문했다. 맛있었다... 물가 너무 눈물 난다... 양고기를 먹었어야 했어..



    수도원을 둘러보러 갔다. 암벽 위에 대체 어떻게 이런 건물을 지었는지. 계속 감탄만 나왔다. 수도원 지하는 어둡고 고요해서 절로 경건해졌다. 이런 외딴곳에서 평생 기도하고 학문하며 살아가는 삶은 어떨지 뼛 속까지 세속적인 나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성 안도 정말 멋졌지만 역시 몽생미셸은 성 바깥에서 봐야 진짜인 것 같다. 갯벌 위의 바위섬에 우뚝 솟은 첨탑이라니. 숙소에 가서 샌드위치를 하나 먹고 삼각대를 챙겨 나왔다. 내가 야경 찍으려고 비싼 돈 주고 여기 숙소 잡았는걸... 지금은 찍고 들어왔다. 춥고, 깜깜해서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황홀한 풍경이었다. 이 한 컷을 위해 삼각대를 가져온 게 후회되지 않는 풍경. 나를 여기로 이끈 사진만큼 엄청나진 않지만 내 눈엔 충분히 멋진 사진. 살짝 감기기운이 도는 것 같지만 그저 황홀했던 풍경. 오래오래 기억할 거다.      



Day 10



    아침에 눈이 좀 일찍 떠진 김에 몽생미셸을 한 번 더 보러 나갔다. 기대도 안 했는데 해가 뜨는 시간이었고 조금 흐렸지만 정말 황홀한 광경이었다. 어제부터 계속 황홀하다 황홀하다 하는데 그만큼 ‘황홀하다’는 말이 딱 맞는 곳이다. 한참 사진을 찍다가 버스를 놓칠 뻔했다. 크로와상 하나 급하게 먹고 렌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크리스틴을 다시 만났고 그녀와 작별인사를 했다. 수리 견적이 새 상품 가격보다 훨씬 쌀 것 같지도 않고, 해외송금 수수료가 만원이 넘기도 하고 무엇보다 빨리 잊고 싶어서 그냥 현금으로 가스레인지 덮개 새 상품 가격을 주기로 했다. 파리에서 아껴 써야지... 이렇게 일단락 지을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


    지금은 렌 역 라운지에서 라떼를 마시며 기차를 기다리는 중이다. 파리에 도착해서 3시쯤 점심을 제대로 먹고 싶은데 그 시간에 여는 식당이 있을지 조금 걱정이긴 하다. 이젠 화장실이 좀 가고 싶은데 열차 탈 때까지 기다릴 거다. 유럽.. 화장실 때문에 쓰는 돈이 제일 아까워.. 기차를 타고 달리는 두 시간 내내 창밖으로 지평선이 보이는 건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우리나라는 빌딩 아니면 산이니까. 어떻게 나라가 이렇게 평평할 수 있지..? 싶다. 그리고 기차에서 3G가 안 터진다. 2G가 말이야 방구야!! 우리나라가 IT 강국이라는 게 어떤 의미에서 그런 건지 프랑스에서 배워간다.


    지금까지 숙소 이동이 다 밤에 이루어져서 너무 무섭고 싫었는데 낮에 옮기니 그냥 좋다. 내가 숙소를 옮기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어두운 데서 초행길 찾아다니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에릭은 친절한 호스트였고 파리 숙소는 좁고 귀엽다. 에펠탑까지 걸어서 10분 좀 넘게 걸린다. 짐을 풀고 에펠탑을 보러 갔다. 계속 끄트머리만 보이던 에펠탑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내가 진짜 파리에 있구나’ 하는 게 팍팍 느껴졌다. 사실 에펠탑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크고 생각보다 멋졌다. 마침 해가 지고 있었고, 불이 들어오는 시간이었다. 라라랜드 OST인 A Lovely Night을 들으면서 걸었는데 눈앞의 풍경과 정말 잘 어울렸다. 뭔지 모르게 로맨틱한 도시였다.



    해가 졌는데도 사람이 많아서 덜 무서웠다. 렌에서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무서웠는데 파리는 확실히 좀 더 ‘도시’라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런 도시에서 대형마트가 저녁 일곱 시에 닫는다... 저녁을 간단히 때우려고 사온 즉석요리는 감자인 줄 알았던 게 시금치 향이 풀풀 나서 연어만 겨우 먹고 버렸다.. 나가라고 재촉해서 물을 못 사 온 게 너무 서럽다! 숙소는 수압이 구리지만 온수가 잘 나와서 좋다. 그리고 일주일을 같은 숙소에 묵으니 짐 펼쳐두기 편해서 참 좋다. 이제 내일 뭐 할지, 공항에는 어떻게 가는지 검색해 보고 자야겠다. 혼자 여행의 마지막 날,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은 뭐가 다를지 궁금하다.




    여행지 결정에 절반 정도의 지분을 차지했던 몽생미셸, 드디어 등장. (지분의 나머지 절반은 호카곶이었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너무 멋진 몽생미셸의 야경 사진을 보고서는 언젠가 저기를 꼭 가보리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아주 작지도 않은 소망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하고 기분이 묘하게 붕 떠 있던 게 아직도 생각난다. 


    몽생미셸 여행을 떠올리면 함께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위아더나잇(We Are The Night)의 '깊은 우리 젊은 날'이다. 가사는 울지 말라는데 들으면 왠지 자꾸 울게 되는 노래다. 

    울지 말아요 그대여 거리는 흔들려도 비틀거리지 마요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약해진 건 언제부터였는지 무표정한 얼굴 서로를 지나치고 무표정한 얼굴 서로를 대해도 울지 말아요 그대여 다 괜찮아 때로는 청춘이 가벼워 이 시간이 너무 두려워 손을 뻗어봐도 그대와 나는 어쩔 줄을 몰랐네 우리 지난날을 추억하고 우리 오늘날을 간직하고 기억해요 깊은 우리 젊은 날 Why Why 이유 없이 아팠던 Why Why 널 보며 가슴 뛰던 깊고 기뻤던 깊고 기뻤던 깊은 우리 젊은 날 이토록 빛나던 그늘이여. (가사 인용)

     2018년 8월 22일에는 노래를 듣고 이런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퇴근길 랜덤재생 중에 몽생미셸에서 들었던 곡을 만났다. 몽생미셸을 향해 걸어가던 밤, 새벽, 추위 속에서 낑낑대며 삼각대를 펴던 기억이 밀려와 전율 비슷한 게 등을 스쳐갔다. 도착하자마자 사진을 꺼내봤다. 이런 순간을 위해 여행을 가는구나 싶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행복했다. 또 가고 싶어요.'


    저때의 퇴근길은 학교 행정팀 계약직 일이었을 거다. 2019년도 1학기 교환학생이 확정되고 생활비를 넉넉히 모으기 위해, 겸사겸사 학기를 좀 늦춰서 3학년 때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 휴학을 했었다. 어쩌다 보니 교내에서 근로하는 계약직 일이 있어서, 휴학해놓고 매일매일 학교 가는 사람이 되었었다. 저 메모 후에 떠난 교환학생에서도 많은 추억들을 여러 노래에 담아왔다. 그것도 언젠가 하나하나 풀어보고 싶다. (그럼 좀 성실히 써보자...)


    10일 차 일기의 '내가 숙소를 옮기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어두운 데서 초행길 찾아다니는 게 싫었던 것 같다.' 부분을 읽으면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잘 분석하고 분류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알아야 나에게 알맞은 것을 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수적인 것 같다. 계속 밤에만 숙소를 옮겼다면 '낮 시간의 이동은 괜찮다'는 걸 알아채기가 어려웠을 테니까 말이다. 꼭 여행에서만 아니라 다른 모든 영역에서도 그렇다. 일이 너무 힘들었을 때, 내가 경험한 직장생활이 여기뿐이다 보니 학교가 안 맞는 건지, 상담이 안 맞는 건지, 학교상담이 안 맞는 건지 알 수가 없어 혼란스러웠다. 올해 위치를 한 번 옮겨 보니 생각을 조금 정리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더 많은 여행과 더 많은 경험을 하며 살아야지, 한번 더 다짐하게 된다. 그런데 이제는 피곤해서 이동 자체가 싫어진 것 같기도 해..... 젊을 때 많은 경험을 해보라는 게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때가 지나면 내 안의 열정이 사라지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 때는 버킷리스트였지만 이제는 안중에 없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처럼 말이다. 고등학생 때는 그게 그렇게 타 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돈 내고 무슨 고생이지 싶다. 요통에 자리를 내어준 낭만... 서글퍼라. 다음 주에는 한 번 가던 요가를 두 번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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