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형제의 연애와 결혼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언니의 지적장애에 대해 이야기할지 말 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이 사람과 혹시 모를 더 먼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는 언니의 장애에 대해 고지하는 게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얘기하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결심씩이나 필요한 일이다) 언제,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의 고민이 뒤따랐다. '나'라는 사람을 먼저 본 후에 장애형제의 존재를 아는 것과 나를 모두 알기 전에 장애형제의 존재를 겹쳐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나를 보여줄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싶다가도, 그 시간들 후에도 언니의 장애가 넘지 못할 장벽이 된다면 그때 내가 받을 상처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일찌감치 말해버리고 싶기도 했다.
지난 '비장애형제 나는' 모임에서 위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오늘 이 모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비밀의 모임이라고 했다고, 내일 남자친구를 만나서 이 모임에 대해 설명하며 언니의 지적장애를 이야기할 예정이라고 하자 다들 많이 떨리겠다며 공감하고 응원을 보내주셨다. 그날은 잠을 설쳤다. 내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반응은 어떨지 모르겠어서, 내가 어떤 반응을 원하는지도 모르겠어서 심란한 마음이었다. 막상 다음 날 남자친구는 '비밀의 모임'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나에게 모임에 대해 묻지 않았다. 이대로 덮을 수도 있었지만 어제 잠을 설친 게 억울해서라도 오늘 말을 하고 싶었다.
"어제 말했던 비밀의 모임 있잖아"
- "아 깜박했었네. 그건 무슨 모임이야?"
"'나는'이라고, 비장애형제 모임이야. 형제자매에게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 나누는 곳이야. 우리 언니한테 지적장애가 있거든. 그래서 나도 모임에 가서 이야기하고 왔어."
- "그랬구나."
"..."
- "..."
- "태어날 때부터 그러신 거야?"
"응"
- "부모님이 힘드셨겠네."
"그러게"
- "그럼 모임에서는 다 같이 상담받는 거야?"
"상담이라기보다는 그냥 서로 이야기 나누는 거야"
- "그렇구나. 알겠어"
끝이었다. 차를 마시며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나눴다. 미뤄오던 스케일링을 다녀온 것처럼 마음이 가뿐했다. 이 관계의 미래를 이제는 그려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섣불리 다른 말을 얹지 않고 담담히 들어준 남자친구에게 고마웠다. 어느덧 다른 사람에게 언니에 대해 울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 내가 대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 달 후. 다시 돌아온 '나는' 모임에서 누군가가 물어봐주었다. 전에 남자친구한테 말한다던 건 잘했냐고. 어떻게 됐을지 궁금했다고. 어디에도 하지 못했던 내 이야기를 기억해 주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그 사람들과 당사자성을 가진 공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