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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Jun 20. 2024

감점요인(?)

비장애형제의 연애와 결혼

    "저번에 남자친구한테 말한다던 건 잘했어요?"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언니의 지적장애에 대해 이야기할지 말 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이 사람과 혹시 모를 더 먼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는 언니의 장애에 대해 고지하는 게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얘기하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결심씩이나 필요한 일이다) 언제,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의 고민이 뒤따랐다. '나'라는 사람을 먼저 본 후에 장애형제의 존재를 아는 것과 나를 모두 알기 전에 장애형제의 존재를 겹쳐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나를 보여줄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싶다가도, 그 시간들 후에도 언니의 장애가 넘지 못할 장벽이 된다면 그때 내가 받을 상처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일찌감치 말해버리고 싶기도 했다. 


    지난 '비장애형제 나는' 모임에서 위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오늘 이 모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비밀의 모임이라고 했다고, 내일 남자친구를 만나서 이 모임에 대해 설명하며 언니의 지적장애를 이야기할 예정이라고 하자 다들 많이 떨리겠다며 공감하고 응원을 보내주셨다. 그날은 잠을 설쳤다. 내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반응은 어떨지 모르겠어서, 내가 어떤 반응을 원하는지도 모르겠어서 심란한 마음이었다. 막상 다음 날 남자친구는 '비밀의 모임'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나에게 모임에 대해 묻지 않았다. 이대로 덮을 수도 있었지만 어제 잠을 설친 게 억울해서라도 오늘 말을 하고 싶었다. 


    "어제 말했던 비밀의 모임 있잖아"

    - "아 깜박했었네. 그건 무슨 모임이야?"

    "'나는'이라고, 비장애형제 모임이야. 형제자매에게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 나누는 곳이야. 우리 언니한테 지적장애가 있거든. 그래서 나도 모임에 가서 이야기하고 왔어."

    - "그랬구나."

    "..."

    - "..."

    - "태어날 때부터 그러신 거야?"

    "응"

    - "부모님이 힘드셨겠네."

    "그러게"

    - "그럼 모임에서는 다 같이 상담받는 거야?"

    "상담이라기보다는 그냥 서로 이야기 나누는 거야"

    - "그렇구나. 알겠어"


    끝이었다. 차를 마시며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나눴다. 미뤄오던 스케일링을 다녀온 것처럼 마음이 가뿐했다. 이 관계의 미래를 이제는 그려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섣불리 다른 말을 얹지 않고 담담히 들어준 남자친구에게 고마웠다. 어느덧 다른 사람에게 언니에 대해 울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 내가 대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후. 다시 돌아온 '나는' 모임에서 누군가가 물어봐주었다. 전에 남자친구한테 말한다던 잘했냐고. 어떻게 됐을지 궁금했다고. 어디에도 하지 못했던 내 이야기를 기억해 주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그 사람들과 당사자성을 가진 공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했다.




    명절을 지나며 남자친구네 가족 분들이 나를 궁금해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나이, 직업 등을 간단히 말씀드렸더니 아주 환영하셨다고. 환영은 기분 좋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우리 언니의 장애에 대해서도 가족들에게 얘기했을까? 나에 대한 환영이 그걸 다 알고 하는 말인 걸까? 나로서는 겨우 꺼내보인 약한 부분을 듣자마자 가족들에게 홀라당 얘기해 버렸다면 그것대로 기분이 썩 좋지 않고, 얘기하지 않고 얻은 환영이라면 반쪽짜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해 남자친구에게 확인할 만큼의 용기는 나지가 않았다. 이 관계의 미래는 나와 상대방만 그린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상대방의 가족까지도 그 그림 속에 있어야 하는 거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남았다.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이전의 연애에서는 나이나 상황 면에서 진지하게 결혼을 그릴 단계가 아니어서 마음으로 와닿지가 않았었나 보다. 늦은 깨달음이 착잡했다.


    장애 형제로 인한 예비 시댁의 반대를 당연하게 생각했던 게 되돌아보니 상처였다는 한 비장애형제의 말이 떠올랐다. 언젠가 내가 그 반대를 겪더라도 '뭐야, 나쁜 사람들!'이라고만은 절대 생각할 수 없는 게, 그 반대가 납득이 가는 게 속상하고 슬프다. 나부터도 당연하게 언니의 장애가 나의 결혼에 마이너스 요소가 될 거라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에 대해 언니에게 그리고 우리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도 한편에 있다. (너무 구린 발상이지만....) 결혼이 조건을 따진 가족 결합이라면, 나라는 개인의 총점에서 언니의 존재를 감점하고서 비슷한 점수가 되는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겉으로 보이는 조건이 나랑 비슷하다고 그 사람을 대등하게 만날 수 있는게 아니지. 나는 언니가 있으니까. 이런 생각이 무심코 든다는 걸 알아챈 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그저께 이걸 깨달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언니의 장애를, 장애를 가진 언니의 존재를 내 인생의 감점요인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던 거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또 너무 큰 죄책감이 들고... 그러다가 언니가 짐인 건 사실인데! 실재하는 책임인데! 사실대로 생각도 못하나! 다른 사람들은 이런 고민 안 할 텐데! 싶은 반발심도 들고 그렇다. 몇 살을 먹어야 이런 마음이 해결될까. 언니와 함께하는 상견례도, 결혼식도 상상하자니 너무 막막하다. 여차저차 관문을 넘어 결혼을 하고 나면 이 마음이 해결될까? 그때부터 또 새로운 고민의 시작이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우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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