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지만 미워하진 않아 feat. 브로콜리너마저
“선생님, 저희 학교에 한 학생이 자꾸 다른 학생들을 힘들게 해요. 자기 친구가 없어서 그런가, 다른 약한 애들을 끌고 다니면서 상처를 줘요. 어떡해야 할까요.”
“음…. 그 학생은 자기 살 길을 찾고 있는 것 같은데요. 지금 그게 누구의 문제인가요?”
그 말씀을 듣는데 머리가 띵했다. 그렇지. P는 자기 살 길 찾는 거지.
P는 학교에서 혼자 있지 않으려 어떻게든 친구를 계속해서 찾아내고 끌고 다니는 중이었다. 그 '친구'들이 주로 다른 반에서 적응을 못 하는 학생들. 조용하고, 여리고,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이라는 점은 ‘나의’ 속상함이었던 것이다. 약한 친구들을 데리고 다니며 상처 주는 말을 하는 학생과, 끌려 다니며 상처받는 와중에도 자기를 지키고 다른 친구를 사귀는 법을 모르는 학생. P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는 방향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자기주장, 자기 방어 능력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접근할 수도 있었다. 어느 한쪽 만의 문제는 아닌데. 나는 왜 P가 문제라고 생각했을까? 왜 P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건 내 마음 때문일 거다. P 때문이 아니라.
내가 말로 상처 주는 사람을 싫어하니까. 배려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P는 나랑 얘기하기 싫다고 문을 쾅 닫고 떠난 적 있으니까. 그냥 내가 P를 싫어하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학생을 싫어한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어려워서, 그런 못난 나를 도무지 인정할 수가 없어서. ‘P가 다른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는 게 문제야.’라고 상황을 규정하고 P를 교정하려는 방향에서만 접근했던 것 같다.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