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ction series
눈이 뻘건 검은색 하운드가 침을 흩뿌리며 격렬하게 뒹굴고 있었다. 그 개의 몸보다 훨씬 큰 늑대들이 달려들었다. 그 개가 막지 못한다면 늑대들은 나를 덮칠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오고 가는지 보이지 않는 밤바다의 파도처럼, 그 검고 차가운 물이 언제 나를 덮칠지도 모른다. 내 곁에 일렁이는 두려움이 말이다. 하운드의 눈동자가 이글거렸고, 금방이라도 혈관이 터질 것만 같았다. 분기탱전하였고 미친것 같았다. 그가 나를 지키는 자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살기는 압도적이었다.
탁. 탁탁. 쿵.
크게 난 소리에 겨우 깨보니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다. 이것이야 말로 비현실적이다. 누군가의 방문은 내게는 거의 없었던 현실이다. 차라리 꿈속의 두려움과 살기가 더 현실적이다. 매우 작은 입구는 작은 데크를 넘어서서 곧바로 회색빛의 바닷모래사장으로 이어진다. 문 하나와 창문 하나가 뚫린 매우 단출한 상자 집은 그 모던함이 멋스러워 보이면서도 위태롭다. 문을 열어 맞이한 손님의 얼굴이 낯설다. 좋은 소식도 나쁜 소식도 아닌 참으로 건조한 말을 전하러 온 전령사였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잊어버린 채 겨우 꿈에서 헤어 나오는 중에 이를 만났다. 어떤 작전에 참여를 요청하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나의 “고견”을 듣고 싶다고 하여 우리 둘은 좁은 데크에 서서 일출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힘을 주어 이렇게 말했다. 공생과 연대. 인간의 다층적 생태뿐만 아니라, 인간 외의 생물과 무생물적인 존재들까지 통틀어서 모두를 유기적으로 고려하고 배려하여 서로가 서로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고 어려운지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이제는 더 이상 비정상적인 인간의 인간 스스로와의 관계와 비인간계와의 관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나의 메시지가 전달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그 작전에 투입되는 것에 대해서는 거절 의사를 밝혔음도 곧바로 전달이 되었다. 비몽사몽간에 대화가 이루어졌음에도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확고하고 명료한 의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고립된 생활로 돌아갔다. 이 바닷가는 활기찬 여름이 없다. 짠 바닷바람과 억센 바닷가 식물들이 야무진 가시를 뽐내는 내 생활만큼이나 황량한 곳이다. 자발적인 유배인 것 같다. 쉬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정확히 이 바닷가 곁에 조용히 서있는 상자 집에서 머물고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하운드는 실제로 이 집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나를 감시하는 존재인지 지키는 존재인지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이 곳엔 선과 같은 악과 악과 같은 선이 양면의 얼굴을 모두 지니고 있다. 광견병이라도 걸린 것 같은 개가 누구보다 충실하게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마치 유배를 온 것 같은 내 생활이 휴가 같기도 한 것, 전문 킬러 같았던 방문객은 더도 덜도 아닌 주어진 일만 깔끔하게 수행한 의롭지도 불의하지도 않은 존재였다.
이곳의 땅도, 동쪽으로 펼쳐진 잔디 깔린 공간도, 본디 땅의 속성과 그렇지 않음이 공존했다. 트램펄린을 타는 듯 탄력 있게 출렁이는 잔디가 가장 유일하게 직설적으로 초현실적인 공간이다.
나의 일상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상자 집 내부는 마치 ‘안’이라는 것이 없는 듯 존재 자체가 없다. 집이 비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안과 그 안에 사는 내가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이며 또 초현실적인 바깥 풍경과 그 상자 집의 외형이 집 ‘안’의 풍경인 듯하다. 속과 겉이 뒤집혀 있다. 피부는 안에 장기는 바깥에 있는 것 같다. 나의 일상을 상자 집 안에서 찾으려는 시도를 그래서 그만두었다. 집 안에 들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바깥으로 나서는 일인 듯하다. 그 또한 일상인데 나는 유배 중임이 분명하니 바깥으로 나가서 외부세계의 만나는 것은 정황상 맞지 않는다.
방문객이 돌아간 후 정오가 다 되어서야 아침 산책을 나선다. 날이 흐리고 바닷물은 짙은 회색빛이다. 말라서 오히려 더 달콤해 보이는 빨간 열매와 해풍에 꾸덕해진 해초더미가 엉켜있다. 속이 텅 빈 갈대가 바람에 이리저리 쓸려 다니며 파도 위에 또 다른 리듬을 더한다. 섬광이 보였다. 갑작스럽다. 예상치 못한 빛은 그렇다고 공격적이지는 않았다. 무엇에 부딪혀 그렇게 깨지듯 강렬하면서도 따사로운 빛깔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는 다시 회색빛 하늘과 물에 숨어버린 듯하다.
까끌한 모래들이 촘촘하게 내가 바라보는 전경의 반을 채웠다. 젖은 모래는 짙은 회색이고 마른 모래는 하얗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갈색, 베이지, 보라색, 녹색 등 다양하기도 하다. 각각의 고유한 자태로 존재하는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가 서로의 옆자리에 앉아 흐르고 비비고 하면서 거대한 모래사장을 만들어낸다. 상상할 수 없는 숫자들이 모여서 모래사장이라는 한 단어로 존재한다. 그래도 모래 알갱이 하나의 유구한 세월 속 이야기를 기억해보려고 한다. 큰 단위의 말은 압축이 아니라 제거로 생긴다. 모래사장이라는 단어로 일축한 수많은 모래 알갱이들 각각의 이야기. 모래사장 하나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내 인식을 축소시켜버린다. 모래 알갱이들이라는 말을 빌어 겨우 작은 존재의 풍성함을 인식한다. 더 많은 단어를 만들어 인식의 세계를 세분화할 것인지, 아니면 말 너머의 세계의 끝없음을 있는 그대로 감지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