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9일 광주 전통문화관 공연에 부치는 글
Sounds in Space
즉흥적인 부딪힘을 통한 어우러짐은 도처에서 일어난다. 출근길 모르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하나의 열차칸에서 씨름하는 일도, 느닷없이 등장한 전염병에 대응하는 일도 그렇다. 계획된 것을 그대로 이행하여 펼쳐지는 일이 아니기에, 오히려 그동안 반복되어온 일상이 지속적으로 깨어져나가 끊임없이 새로운 행동방식을 선택해나가야 하므로, 즉흥성을 띤다. 우리가 비상사태에 탄력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스템이 준비되어야 하듯, 즉흥연주를 하는 음악가도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기량을 갈고닦아 신정기에 아로새겨진 자신의 음악을 새로운 마음으로 내어놓게 된다. 한바탕 즉흥연주 공연이 이루어질 때, 연주자들은 함께 새로운 현실을 직면하는 동시에 창조적으로 펼쳐내어 공동의 시공간을 만들어 낼 것이다. (2020.7.30)
위의 짧은 한 단락의 함축적인 글이 50분 정도의 밀도 있는 공연 내용의 전부다. 주최 측에서 소책자에 넣을 연주곡 리스트를 생각하며 공연 설명을 부탁했는데 위와 같은 글을 보냈으니 어리둥절하여 전화를 걸어오는 것이 당연했다. 연락을 받고서야 현대의 즉흥음악은 분명 다수의 사람들에겐 경험이 부족한 음악임을 기억하게 되었다.
보편적이고 현실적인 행동방식으로써의 즉흥 연주
우리가 표면적으로 인식하는 것보다 ‘나’와 ‘우리’는 더욱 복잡, 다양하다. 즉흥연주는 그런 다양한 요소들이 적극적으로 고려되어 만들어지기에 진정 현실에 가깝다고 느낀다.
즉흥연주에서는 음악이 만들어지는 방식에서부터 음악가들은 사회적인 실험을 하게 된다. 음악이라는 예술장르에서는 다소 실험적 일지는 모르나 실제론 우리의 일상과 더욱 닮아있는 행동양식을 음악에 적용한 것뿐이다. 자신만의 음악세계가 있는 연주자 각 개인이 한날한시에 모여 리허설 없이 현장에서 음악적으로 겨루면서 소통하여 음악을 이뤄나간다. 아무런 약속이 없다. 악보도 없고, 계획된 노래나 곡도 없다. 아마도 누군가 운을 띄우면 각자의 언어로 맞장구도 치고, 새로운 주제를 들고 나오기도 하며 주어진 시간 속에서 음악이 만들어져 나올 것이다. 마치 네 명의 친구가 종로의 한 맥주집에 모여 함께 하는 대화처럼 말이다. 모임의 대화가 무작위적인 듯 하지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또는 공동의 주제로 꾸며질 것이다. 그렇게 카오스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별 것 없이 흘려보내고 마는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어떤 묵직한 의미가 있는 경험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즉흥연주 공연은 맘대로 신나게 먹고 마는 행위와는 분명 다르다. 연주자는 각자의 지향점과 그리고 공동의 지향점을 모두 가지고 임할 것이다. 적어도 나는 연주를 할 때 나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내 힘을 온전히 아낌없이 다함과 동시에 공연을 사적인 행위로 생각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모아 자의 눈 끔 하나만큼이라도 더 나은 미래 속으로 나아가는 데에 최선을 다한다. 이것이 나의 음악가로서의 직업윤리일 수도 있겠다.
우주적 현실을 탐구하는 즉흥 연주
인간의 현실은 우주, 즉 시공에 있다. 시공 속 중력, 즉 나와 세상의 역학관계를 보다 적극적인 행위로 연구하여 다루게 되는 것이 음악이고 또 즉흥 음악이다. 즉흥 음악은 시간성과 현장성을 예술작품의 소재, 재료 또는 요소로 끌어들인다. 또한 시간과 공간을 운용하는 주체인 연주자 자신이 자기 본위에 충실할 때에 드러나는 강한 중력이 중력장을 만들고 각 연주자의 중력장이 역학 작용을 통해 중력파를 만들어 폭발적인 무언가를 창조해낸다. 물론 다른 방식의 음악 행위 (musiking 또는 music making)가 이러한 우주의 작용에 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즉흥 연주를 통해서 더욱 직접적으로 우주 즉 자연의 원리를 음악적으로 실현해 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즉흥 음악은 정해놓은 무언가가 재현되는 것이 아니다. 나와 함께하는 연주자의 의식과 몸이 활달히 통하여 현장성 있게 운동함으로써 음악이 만들어진다.
(이 날의 공연은 한 관객에 의하면 “폭풍처럼” 지나갔다. 시작과 끝이 있는 곡이 두 번 나왔는데, 각각 25분 정도로 연주자들의 긴장감 있는 몰입으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온 힘을 다 했다. 더군다나 폭포 명창이란 별명이 있는 배일동 명창님의 기세에 맞서다 보니 나중에 손에 멍이 들어있었다. 물론 손톱도 깨졌다. 내가 젤 네일을 굳이 공연 전에 하는 이유가 사실은 손톱 보호라는 것은 안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