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칼
손을 베였단다.
엄지손가락 밑에 2센티미터 정도 되는 아직 덜 여문 상처가 있다. 피가 많이 났는데 양파를 올려두었더니 지혈이 됐고 낫고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조심 좀 하지, 왜 그렇게 자주 칼에 베이냐고 타박하니 칼을 무서워하지 않아서 그렇단다. 엄마는 식당 일을 하던 예전에도, 고기를 정육 하는 지금도, 끼니를 챙기는 보통의 날에도 종종 손을 다친다. 나라면 그렇게 자주 손이 베이면 무서울 것 같은데 너무 예리한 칼은 피할 것 같은데 엄마는 칼이 무뎌지면 어디고 갈아서 날카롭게 한다. 우리 집에 오면 칼이 무디다며 답답해한다. 손이 다치면서도 겁 없이 예리한 칼을 움직이며 음식을 하고 일을 한다.
엄마는 아픈 것에 엄살이 없고 상처에 호들갑스럽지 않았다. 이 호들갑스럽지 않은 점, 예민하지 않은 반응이 때로 서러웠다. 대학시절 상담을 배우며 I-message로 사춘기 때 엄마가 내게 묻지 않아서 서운했다는 말을 했다. 방문을 꼭 닫고 서운한 마음도 꼭꼭 닫아두었던 그때의 이야기를 말이다. 엄마는 먼저 말하지 않으니 괜찮으려니 했단다. 어쩌면 엄마의 말처럼 말하지 않으면 큰일이 일어날 일이었던 것도 아니다. 지나고 보면 살면서 누구나 겪을 만한 일이었고 누구나 겪었던 일이기도 했다. 부부싸움 안 하는 집이 없고 이혼의 위기를 겪지 않는 가정이 없는 것처럼 IMF를 겪은 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그때 다 비슷하게 불행했다. 비슷하게 괜찮아지기도 했다.
엄마의 그 호들갑스럽지 않음이 어쩌면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한 것도 같다. 엄마에게 날카로운 칼의 예리함만 있었다면 나는 예민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섣불리 기대고 쉽게 상처받으며 감정에 갇힌 아이로 자랐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의 그 빈 공간 속에서 나는 울음을 삼키는 법과 스스로를 견디는 법을 배웠다.
한 번씩 꺼내 묻는다. 엄마는 왜 그럴까, 이해되지 않는다. 왜로 답할 수 없는 복잡한 양면성. 고마우면서 서운하고 따뜻하면서 서럽다. 세상 제일 편하면서도 불편하고 어렵다. 엄마에 대한 복잡한 마음들이 칼에 베인 엄마의 상처를 보며 조금 이해된다. 엄마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 예리한 칼을 좋아하는 무딘 사람. 그런 엄마가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 주듯 나도 엄마를 그대로 알아주어야 한다.
탁탁 탁탁 엄마의 칼소리가 들린다. 아침에 일어나면 귓가에 울리던 소리. 소란스럽지 않은 배려와 너그러움을 간직한 소리. 변함없는 그 소리 그 어디쯤을 나도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