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원해가지고 땀을 안 흘렸네

나를 잡는 손

by 엄마참새

이번 주는 아이 어린이집이랑 가까운 곳이 근무지여서 퇴근하고 곧장 데리러 갔다. 입구에서 기다리는데 셋째가 커다란 상자 하나를 챙겨 나온다.

"이걸 가지고는 버스를 탈 수 없으니 오늘은 엄마랑 버스를 타고 내일 아빠랑 갈 때 가져가면 안 될까?"라고 청해봐도 소용이 없다. 상자로 동생을 태워줘야 하므로 기어코 집에 가져가야 한단다. 옆에서 듣고 있던 넷째도 형아가 어린이집에서 이걸 태워줬다며 거든다.


'그래, 날도 좋은데 오랜만에 걷자!' 대신 자기 물건은 자기가 들기로 단단히 약속한다.

집에 가는 길에는 애벌레가 먹은 나뭇잎, 거미줄, 떨어진 솔방울, 자연이 주는 볼거리가 가득하다. 나무에 가시가 있다는 아이의 말에 자세히 보니 도깨비방망이 같았지만 꽃이 진 자리에 단단하게 여물 어가는 씨앗 주머니였다. 꽃이 지고 열매가 익고 씨앗이 여무는 계절이다. 이제 막 가을이 온 듯한데 나무는 겨울을 지나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변함없이 제 몫을 하는 나무가 대견해 보였다.


집 근처에 거의 도착할 무렵 내리막을 걸으며 아이가 말했다.

“너무 시원해가지고 땀을 안 흘렸네”

제법 긴 오르막 길을 걸어온 아이가 집으로 향하는 내리막에서 제 몸보다 큰 상자를 들고 말이다. 그 모습이 대견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 순간 아이의 손도 나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언제나 엄마인 내가, 어른인 내가 잡아주는 거라고만 알았는데 내 손을 꼭 잡은 아이의 손 또한 나를 잡아주고 있었다.


작은 손이 내 손을 잡는다. 나를 꼭 잡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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