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말했다
세탁기를 돌려두고 미용실에 왔다. 뿌리에 가까운 머리카락의 색이 머리카락의 끝과 같아지길 기다리며 이메일을 열었다. 일간 이슬아메일이 도착했다.
돈이 많아지면 엄마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싶다고, 일을 멈춰도 될 시간을 선물해 주고 싶다고, 그런 애틋하고 갸륵한 문장들을 첫 책에 꾹꾹 눌러 적었었다. 그래 놓고 엄마를 고용해서 실컷 일을 시키고 있는 내가 밉기도 했다. 내가 아는 건 우리 둘 다 일을 멈출 수 있을 만큼 부자는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엄마의 몸과 마음을 덜 다치는 노동을 이 세상에서 제일 바라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었다. 엄마를 아예 쉬게 할 수 없다면 엄마가 일해온 그 어떤 가게의 사장보다도 좋은 사장이 되고 싶었다.
일간이슬아 2025.03.04 <이메일에 E자도 모르는 사람아> 중에서
엄마는 내가 아는 한 아플 때 빼고, 그러니까 병원에 입원을 하거나 수술을 받거나 항암을 받아야 할 정도로 정말 많이 아플 때 빼고는 일을 쉬지 않았다. 일흔셋 인 엄마는 여전히 일을 하고 나는 벌써 여러 해를 이제 쉴 때도 되지 않았냐고 한다. 종일 서서 일을 하는데도 엄마는 일주일에 삼일은 쉬니 쉬는 날이 많아서 괜찮다고 하고, 나는 소일거리나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한다. 엄마는 아무래도 그런 일은 마땅치 않은 것인지 나보다 많은 임금을 받으며 더 고되어 보이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나도 슬아님처럼 사장이 되어 엄마에게 월급을 줄 수 있다면 어떨까. 내가 사장이 될 수 있나? 직원을 고용할 정도로 많이 벌 수 있나? 엄마가 사장이 되면 몰라도 거꾸로 내가 사장이 되어 엄마에게 월급을 주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사업수완도 생활력도 부족한 내가 엄마를 쉬게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워 보인다. 엄마에게 쉬라고 하는 것도
"머리 감을 게요."
머리 감는 의자에 눕자마자 '힘을 빼자. 마음을 편안하게 하자.' 마음속으로 되뇐다. 내 머리통을 손으로 들어 감기는 일이 무겁게 보여 조금이나마 무게를 적게 하려고 목에 힘을 주었는데 "머리에 힘 빼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스스로 머리를 들려고 하는 것이 도리어 더 불편하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된 후로는 애써 힘을 빼려고 노력한다.
편안하게 맡기면 되는데 그게 어색해서 애쓰는 나를 보며 엄마도 쉬는 게 어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쉬면 뭐 하겠냐고 한다. 소일거리 해봤자. 얼마나 벌겠냐.라고도 한다.
나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아서 시간이 더더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엄마에게는 시간이 둥그러니 주어지는 게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는 것만 같아서 일을 쉬지 않는 건가, 외로운 것보다는 몸이 좀 힘들어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일터가 엄마에겐 나은 걸까.
그저 편하게 누워있으면 된다지만 어쩐지 불편하고, 편안하게 있으면 된다고 하지만 어색하기만 한 일이 미용실에서 머리 감기만은 아닐 거다.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편안하게 쉬면 되는 게 엄마에게 더 불편하다면, 엄마를 더 아프고 우울하게 하는 거라면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겠다. 엄마를 덜 고생스럽게 해 줄 사장이 되긴 어려우니 그저 다정한 말과 안부전화를 자주 하는 것이 낫겠다.
아무리 염색을 해도 자라나는 머리카락 색이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엄마가 내 생각처럼 되길 바라던 나의 모습이 절로 자라는 머리카락을 보고 염색한 색깔에 맞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머리카락은 본래의 색으로 언제고 자란다. 염색한 색이 좋으면 그 색에 맞춰 뿌염을 하고 본래의 색이 좋으면 어색해도 자라길 두고 봐야 한다. 그러고 보면 뿌염이라는 것이 얼마나 조화로움을 만드는 일인가. 엄마를 인정하는 게 엄마를 바꾸려고 하는 것보다 훨씬 조화로우며 쉬운 일이 라고 생각하며 거울을 본다. 새로 염색한 머리카락 색이 마음에 든다. 한동안 어우러진 머리카락 색에 만족하며 지낼 수 있겠다. 엄마와도 모처럼 다정히 지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