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에서 용기로: 워홀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깨달음

도망을 위해 선택한 캐나다 워홀 이야기

by 유니스

1.

수영으로 작은 성취감을 쌓은 후 "영어도 이렇게 계속 시도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할 수 있다고 가정했을 때, 워킹 홀리데이에 가장 먼저 관심이 갔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세 개의 나라를 생각했고 캐나다에 제일 먼저 프로파일을 넣었다. 랜덤으로 준다는 인비테이션이 하루만에 나왔다. 19년도 그렇게 워홀을 결심했다.


비자를 기다리는 사이 코로나가 터졌다. 국경문은 닫히고 기약없는 합격레터에 대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그 사이 내 삶에는 큰 인지변화가 있었고, 가볍게 알아본 영주권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워홀을 가며 겉으로는 "영주권 따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내 행동은 영주권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었다. 영주권을 따기 쉬운 곳을 찾고, 그곳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2022년, 워홀을 결심하고 3년째 되던 해에 캐나다 워홀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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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행 비행기 안

2.

"무식하면 용감하다." 워홀을 시작하던 당시의 나를 잘 설명하는 말이다.


나는 해외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 나라 언어를 잘 하지 못하는 외국인으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전혀 몰랐다. 영어를 공부하긴 했지만 한참 부족한 상태로 낯선 외국 땅에 떨어졌다. 그곳에서 나는 일을 구하고 적응하는 것이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 구한 직장에서 영어를 이유로 해고당하고, 불법 트라이얼을 경험하고, 크고 작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제야 해외에서 그나라의 언어를 잘 모르는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막막하고 두려운 일인지 체감했다.


워홀 한 달째 되던 때, 짧은 고민 끝에 지역을 옮겨 시골 한인 잡에 가기로 결정했다.

이 역시 영주권을 목표로 한 선택이었다.

IMG_1329.heic 새로 옮긴 지역에 있던 강

3.

캐나다 시골 한인 레스토랑에서의 생활은 적응이 한결 쉬웠다.

한국인이 많은 환경이라 마음이 편했고, 외국인 코워커와 손님들을 통해 영어를 접할 기회도 있었다. 운이 좋게도 악덕 업주는 아니었다. 그곳에서 천천히 캐나다에 익숙해질 시간을 가졌다.


적당한 수입이 생기고 손님을 응대하는 영어가 익숙해지면서 점차 안정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주권을 목표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갔다.


그러나 영어 점수가 계속 발목을 잡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필요한 커트라인을 넘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좌절을 겪었다. 그 좌절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는 왜 영주권을 따려고 하는 거야?"
"이렇게까지 힘들게 얻어야 할 이유가 있어?"
"캐나다에서 사는 게 너에게 어떤 의미야?"


그리고 나는 그 질문들에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영주권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캐나다에서 계속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정말로 살고 싶은 곳은 한국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한국에 있었고, 한국의 음식과 문화가 좋았고, 편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의 기대를 거절하며 생길 가족과 생길 마찰이 두려웠고, 한국 사회에서 재단하는 보통이라는 틀이 버거웠기에.


그래서 나는 영주권을 따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으며 자신을 몰아붙였다. 그 과정에는 내가 원하는 것은 없었고, 그저 "원하지 않는 것을 피하기 위한 도망"만 있었다. 새로운 경험을 바란다는 핑계로 떠난 길이었지만, 사실 나는 도망쳤던 것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귀국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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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정리하게 도와줬던 풍경들


4.

귀국을 결정했을 때, 다양한 말을 들었다.


"아깝지 않아? 조금만 더 해볼 생각은 없어?"
"캐나다에서 좋은 인연이 생겼다면 달랐을 수도 있을텐데."
"시골이 아니라 도시에서 살았다면, 한인 잡이 아니라 현지 잡으로 일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해보지."


이런 말들은 내가 캐나다에서 보낸 시간을 의미 없게 만드는 것 같았다.

때로는 "영주권을 얻지 못했으니 넌 실패한거야."라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내게 필요한 것은 영주권이 아니라 가족과의 대화와 내가 만든 두려움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그 사실을 명확히 알았기에 더이상 휘둘리지 않고 귀국할 수 있었다.

2024년 10월, 2년 반의 긴 여행이 막을 내렸다.

나에게 캐나다는 나의 도피처이자, 나를 돌아보는 시간과 여유를 선물해준 곳이었다.

그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았고 남이 아닌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캐나다에서의 시간은 영주권을 가져다주진 않았지만,
그보다 더 귀한 "두려움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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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보낸 두 번의 계절들


5.

캐나다에서 배운 것들


"해외 한인잡은 한국에서 사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2년 반의 캐나다 생활을 통해 깨달은 건, 그럼에도 캐나다에서 사는 것은 한국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외국인 코워커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문화를 알게되고, 손님들의 행동에서 한국과 다른 점, 같은 점의 이유를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다. 외국인 룸메이트와 지내며 다름이 스트레스가 되는 과정도 겪었고, 다름으로 생긴 갈등은 결국 대화와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것도 배웠다.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범위가 넓어졌다.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여유를 배웠다. 스몰톡의 즐거움과, 사람마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도 체감했다.


이 모든 것들은 캐나다에 가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것들이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캐나다 생활은 내 삶의 지평을 넓혀줬다.

캐나다에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

IMG_2953.HEIC 귀국 전 선물같이 보게 된 오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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