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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얘기를 하는 아이'는,
비뚤어질 틈이 없어

by 그레이스킴

어렸을 때의 나는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해, 엄마가 잔소리를 할때면 내 주장을 펴느라고 소위 목에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바락바락' 대드는 드센 둘째딸이었다. 엄마가 뭐라고 해도 묵묵한 언니와 네 살 차이 나는 남동생 사이에서 나란 존재는 엄마에게도 참 다루기 힘든 존재였을 게다.

그럴때마다 엄마는 화를 못참고 결국 집에 남아도는 빗자루나 파리채 중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잡아 때리거나, 한치를 지지 않고 논리를 펴는 어린 내 말투에 폭발하면서 "나중에 꼭 너 같은 자식 낳아봐라. "라고 말하며 부들부들 떠셨다.



세월이 지나, 나도 아이가 생겼다. 나같은 딸은 아니지만, 나처럼 말 잘하는 아들녀석이 생겼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 사춘기 초기가 오는지 이젠 내 말이 '잔소리 그만하라'며 내 한마디 한마디에 말대꾸를 하며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펼친다. 그리고 잘못을 지적하는 엄마에게 '억울하다'며 "엄마는 내 마음 몰라주고, 코로나때문에 회사일이 힘들어져서 나한테 화풀이를 한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귀가 멍해져 정신이 하나도 없어 부모로써 해야할 적절하고 또 이성적인 대답을 고르느라, 순간 3초의 정적을 머금고 있는데... 대뜸 어린 시절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너 같은 자식 나아보라고....



아이와의 말싸움에 기빠진 나는 퇴근길 운전대를 부여잡으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어린 시절, 거실에서 늘 책을 부여잡고 고고함을 뽐냈던 엄마는, 이제는 너무나 쇠약해진 풍선처럼 약해지셔서 항상 내가 돌봐드려야하고 신경써야하는 대상이 되었지만... 언제나 그랬듯 '내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 주신다.


"엄마 나 보고 예전에 '딱 너 같은 자식 나아보라 했지?'

엄마! 엄마 소원이 이루어졌어.

나, 딱 나같은 자식을 낳은 것 같아..."


꼬시다고 웃을 줄 알았던 엄마는 의외로 고즈넉이 낮은 목소리로 회상에 잠기며

"그래도 너 키울 때, 엄마는 참 재밌었어.

항상 밖에서 일어난 얘기 다 해주고... 힘들었을 땐 왜 힘들다, 뭐가 참 재밌었다.

자식 셋 중에 그런 얘기 해준 애는 너 밖에 없었어." 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엄마가 '하하하하' 꼬시다는 듯 웃으며, "거 봐라~ 내가너 이럴 줄 알았다는데... 클 떄 그렇게 엄마한테 못되 쳐먹게 말대꾸 하더니만" 하시면서 비웃을 줄 알았는데. 그거 감당하려고 반성의 전화 한 건데...


내말을 다 듣고 엄마 하시는 말, "너는 니 얘기를 항상 해줘서.. 엄마가 너 키우면서 얘는 비뚤어질 틈이 없겠다고 생각했어."


내 기억 속의 엄마는 항상 내게 "너는 너무 자기 주장이 강해서, 사회에서 이렇게 행동하다간 언젠가 부러질꺼야. 그래서 내가 너를 미리 고치는거야"라며 엄하게 훈육하신 기억밖에 없었는데. 엄마에게 난 '키우는 재미를 주는 딸'이었구나...

갑자기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래, 이것저것 조잘조잘 말하며.. 그것이 불평이라 할지라도 얘기하는 아이는, 비뚤어질 틈이 없겠네.

적어도 부모와 소통하고 싶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그 부모는 그것을 듣고 알아챌 수 있으니까.



오늘도 초6, 열세살은 게임에 빠져 온라인 수업을 날나리처럼 해놓고 세수도 양치도 안한채 '대학 휴학생'처럼 지내고 있다.

워킹맘은 근무시간 중엔 이렇게 멀리서 전화나 문자로 얘기할수 없음이, 오늘도 매우 안타깝다.


내가 너를 과연, 잘 키우고 있을 걸까? 내가 너무 부족한건 아닐까?

괜히 워킹맘 자녀로 태어나, 너에게 혹여 쓸쓸한 외로움을 주지 않았는지...

하지 않아야하는 걸 아는데도, 꼭 문득문득 파도처럼 밀려오는 워킹맘의 죄, 책, 감.


그래도 난 몸이 아파도, 언제나 맘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울엄마가 있어서.. 나는 참 좋다.

나같은 자식이 또 나같은 자식을 낳고, 그게 대를 물려가도..


우리가 이렇게 오순도순 얘기하고 살면 ..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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