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해주, <엄마도 엄마를 사랑했으면 좋겠어>를 읽고.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말이 많아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늘어놓는 습관이 생겼다. 엄마의 말이 매일 한 마디씩 늘어가는 건 외로워서였다. 그동안 쌓아두기만 한 그 숱한 이야기들을 아무라도 좋으니 좀 들어줬으면 하는.
.... 엄마 안에는 아직도 못다 푼 외로움의 터널이 있다.
- 장해주, <엄마도 엄마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중
이 부분을 읽다가 쿵~ 하고 마음이 내려앉았다. 늘 무심하고 차갑기 짝이 없는 딸인 내 모습이 떠올라서.
얼마 전에도 엄마의 논리 정연하지 못한 말들, 넘쳐나는 말들을 차갑게 끊어내며 훈계질 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급작스럽게 결정된 아빠의 수술, 이사 문제를 앞에 놓고 많은 고민과 큰 결정들을 앞에 놓고 불안해했을 엄마의 그 말들을 차분하게 들어주지 못하고 나는 말했다.
"엄마, 이미 결정된 일이잖아. 그 모든 결정의 과정들을, 그 모든 프로세스와 사연들을 내가 다 들어야 해? 그냥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만 말하면 되잖아. 바쁘다고 했는데 왜 자꾸 말을 길게 해. 엄마 요점만 간결히 말해~"
혼자 애끓였던 시간들을, 그 마음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고 딸들에게 위로받고 싶어 전화했을 텐데. 간만에 딸이 들어주니 또 좋아서 이런저런 말을 주저리주저리 하며 답답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싶었을 텐데...
'아, 아무리 노력하려 해도 난 참 차갑고 어려운 딸이다.' 가끔씩 내 마음이 동할 때, 작심을 하고 효녀 놀이를 하며 그동안 밀린 효도를 벼락치기로 한다 해도, 이렇게 내 일상에 몰입이 되어있을 때는 따뜻한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어쩔 수 없는 무심한 딸이다.
자꾸 잊고 산다. 엄마가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제일 존경하는 인물 란에 쇼팽이나 베토벤이 아닌, 세종대왕이나 유관순이 아닌 엄마를 적었던 그 마음을 잊는다. 중학교 때 말기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엄마를 살려만 주신다면 무엇이든지 다 하겠다던, 신앙이 무언지도 모르고 울며 기도하던 그 소녀의 마음을. 6개월도 안 남았다던 엄마가 신기하게도 아직도 잘 살아가고 계시는 그 감사한 기적을 자꾸만 잊는다.
방송작가를 하는 친한 동생이 이번에 쓴 에세이라 읽어봤다. 읽는 내내 명랑 쾌활한 그녀의 목소리 같은 편안한 문장들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꼭 내가 쓴 것 같은, 나와 우리 엄마의 이야기인가 싶은 이야기들이었다.
'다들 비슷비슷하구나, 딸년들과 엄마는 최고로 친한 것 같으면서도 앙숙처럼 다투고 싸우고... 그러다가도 또 눈물 나게 고맙고 짠하고...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싶었다.
맞아 맞아~ 공감하며 조금 긴 수다를 떤 것 같은 기분으로 쉽게 읽히는 책. 그러나 마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책이었다. 다 읽고는 괜히 엄마 생각이 나, 평소보다 마음을 좀 더 담은 카톡을 한 통 보냈다. 이럴 땐 읽지도 않는 우리 엄마. 아니, 차라리 답이 없는 게 더 낫겠다 싶었다. 이봐 이봐~ㅎ
'이번 어버이날은 손편지라도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톡이나 문자가 아닌 마음이 가득 담긴 손편지. 아프고 힘겨운 일상을 견뎌갈 수 있는 좀 더 진한 뭉클함을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이 세상을 마음껏 휘저으며 살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게 새삼 가슴 깊이 폐부를 찔렀다. 내가 나로 살 수 있게 하는 힘,
그 중심에는 늘 엄마가 있었다.
-장해주, <엄마도 엄마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