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처녀 성장 소설
유통기한이 몇 달 지난 스타벅스 원두를 집 수납장 구석에서 많이 발견했다고 황당해하는 지인. 발굴된 양도 꽤나 많았다. 미국에서 보내준 거니 부모님께서 잘 놔둔다고 놔두다 그냥 쭈욱 모셔만 두고 잊어버리신 것 같다고. 제대로 "아끼다 x 된" 케이스.
어차피 유통기한은 유통에 최적의 시간이라 조금 지나도 괜찮다는 얘기도 은근 들었다. 그리고 커피나 티는 혼자 먹다 보면 회전율이 떨어져 종종 유통기한이 지난 걸 먹고 있을 때도 꽤 있었는데 별 문제는 없었다.
포장에도 fresh flavor를 위해선 2020년 6월 이전에 먹어야 한다고 쓰여있으니 그래 봐야 best 가 아닌 좀 덜 맛있는 good 정도가 아닐까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가격이 꽤 나가는 많은 양의 스타벅스 원두를 무조건 다 버리기는 그래서 몇 봉지 분양받아왔다. 일단 먹어보고 넘 이상하면 방향제로 쓰던가 아님 화초 비료로 쓰기로 마음먹고, 내 몸에 생체실험을 강행했다.
귀찮아도 간만에 콩을 갈아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갈 때 나는 세상 기분 좋은 강력한 향기는 좀 덜했지만, 역시 커피 가는 손맛과 함께 기분 좋은 향이 났다. 그리고 원래 마시던 커피가 꽤 좋은 퀄의 싱글 오리진 원두였어서 스벅 원두보단 향이 좀 더 강력하지 싶었다.
조금 의심의 마음을 품고 맛을 봤다만 마실만하다. 한 모금 더 마셔보니 마실만 한 게 아니라 꽤 괜찮다. 유튜브로 스타벅스 Live BGM을 틀어놓고 마셨더니 제대로 스타벅스가 된다.
흠... 집안 방향제로 쓰려고 했는데, 화초에게도 집에게도 양보하기는 싫은 맛이다. 방향제로 쓰되, 그냥 내가 커피를 마시며 향기를 퍼트리는 전법을 쓰기로 했다.
주면서도 괜히 미안해했던 지인에게 먹어도 안 죽고 잘 살아있다고 인증을 해주니, 그제사 안심하며 같이 처리해주는 걸 고마워하는 눈치. 아, 힘든 일은 함께 나누는 나의 이런 배려를 칭찬해~!ㅋㅎ
예전엔 좋은 날 써야지~ 하며 아끼다가, 까먹고 못써 버려야 했던 것들이 참 많았다. 나이가 점점 들수록 괜히 아끼기보단 지금 쓸 수 있는 건 바로바로 쓰고, 좋은 것부터, 맛있는 것부터 먹으려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얼마 전 엄마가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응급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나와 말씀하셨었다.
수술대에 누웠는데, 문득 사랑하는 손주가 자기 용돈을 모아 할머니에게 처음 사준 예쁜 운동화가 생각났다고. 너무 소중한 선물이라 좋은 데 갈 때 신어야지~ 하며 아끼고 있었는데, 그걸 결국 못 신어보고 가게 될까 봐 너무 안타깝고 억울했다고.
좋은 것, 좋은 시간, 미루지 말고 누릴 수 있을 때 바로바로 누리자!
좋은 것만 하기에도, 사랑만 하며 살기에도 인생은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