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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황 Jun 24. 2017

서른아홉 노처녀의 생애 첫 소개팅 4

노처녀 성장소설

#7. 두 번째 테이크


“한강콜이죠? 네, 제가 강북에서 경기도로 가려는데.. 여기가.. 그러니깐.. 여기가…K갤러리에서…… 여기가.. 절벽인데.. 잉?? ”


‘젠장 여기가 어딘지를 모르잖아.’

급하게 뛰어내렸던 그 절벽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일하는 이모님에게 주소를 물어 다시 한강콜을 불렀다. 콜 아저씨는 10분에서 15분쯤 걸린다고 했다. 인적 없는 깜깜한 밖에서 서있긴 다리가 아프다. 치마를 입고 길바닥에 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카운터 앞에 앉아있다가 그들을 만나면 왠지 더 처량 맞고 우스워진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가서 다시 진상 쳐?’

근데 솔직히 그렇게 박차고 나온 뒤부터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내 안의 유니스가 계속 나를 나무라고 있었다. 

‘조금만 참고 좋게 끝내고 나왔으면 더 좋았잖아.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유종의 미를 거두면 좋았잖아.’라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좋아, 착한 유니스는 다시 한 번 물을 타러 가는 거다.’

거친 갑옷 뒤에 숨겨진 실은 그리 거칠지도 독하지도 못한 황실장도 마지못해 그 뒤를 따른다. 그렇다고 그대들을 용서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은 그대들의 죄를 사하여주기 위해 엔딩을 다시 한번 쓰러 간다. 

혹여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의 잘못은 거의 없었음을 인증받기 위해, 조금은 븅신 같지만 아름다운 로맨스가 아니라면 최소한 코믹으로는 남아야 하는 나의 첫 소개팅의 엔딩을 위해 잠시 두 번째 테이크를 찍으러 가주겠다. 


어느새 내가 앉았던 자리엔 H가 앉아있었고 난 H가 앉았던 입구 자리에 털썩 앉았다.


“아, 잘 오셨어요. 저 지금 형한테 무지 혼나고 있었어요.” 

K가 말을 한다.


“그러실 것 같아서 제가 조금 물을 타 주러 잠시 왔어요. 

택시가 바가지를 씌우려 하잖아요. 장사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내려서 콜택시 다시 불렀어요. 한 10분 안에 온다니 저 잠시 앉아서 기다릴게요.” 제법 명랑하지만 황실장의 껄렁한 톤으로 이야기했다.


“진짜 잘 오셨어요. 그리고 콜택시도 잘 부르셨어요.”

화가 H가 나에게 맥주 한 잔을 따라 조심스레 건네며 말했다.


“저 원래 밤에 택시 타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밤엔 그나마 안전한 콜택시 불러요.”


‘선생님에겐 나 책임지고 데려다준다고 뻥 친 주제에… 잘 부르긴 뭘 잘 불러~!’

라고 내 안의 황실장이 비아냥거렸다. 


‘하긴, 계속 함께 술 마실 새로운 젊은 여자가 오지 않는 한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었겠지.’


난 H가 건네준 잔으로 그와 건배를 하고는 맥주를 완샷 해버렸다. 그 순간 걸려오는 한강콜 아저씨의 전화. 


“네, 도착하셨어요? 지금 나갈게요.” 

전혀 취기 없는 정숙한 여인네의 목소리로 치장한 유니스가 예의 바르게 이야기했다.


“저 이제 진짜 가볼게요. 나오지 마세요.” 

처음보단 한결 부드러운 엔딩 멘트를 치곤 또각또각 빠른 속도로 걸어 나왔다. 

멀리서 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오지 말라는데 왜 나가요? 그냥 앉아있어!”


‘정말 대책 없는 상또라이같은 년. 넌 우리 선생님만 아니었어도 한대 처맞았겠다. 나중에 내가 그따위  로비 없이도 더 잘나가고 유명한 사람이 되어 너의 귀하신 고객님이 되시면 어쩌려구 그러냐.’


#8. 탈출


택시는 절벽에서 나를 다시 한 번 제대로 구하기 위해 입구 앞에 바로 서있었다. 문을 여는데 갤러리 K가 따라 나왔다. 


“오늘 재미있었는데. 아쉽고 미안하네요. 다음에 꼭 다시 놀러 오세요.” 


헛! 쓴웃음이 삐져나왔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고로 건방지고 냉정한 목소리 톤을 불러내 이를 앙다문 채 한마디 던지고 택시의 문을 주저함 없이 닫았다.


“진정?!!”


택시는 나를 안전하게 구출해내 집으로 옮겨주었다. 추가 요금 따윈 전혀 요구하지도 않는 친절함으로. 


집의 문을 열자마자 하루 종일 달궈진 오피스텔의 열기가 훅 몰려왔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옷을 집어던지고 화장을 신경질적으로 지워 내며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고 나와 숨을 몇 번 들이쉬었더니 뭔가 꿈을 꾸다 온 것 같기도 한 느낌이었지만 갑자기 밀려오는 더러운 기분과 길었던 하루에 울컥 눈물이 났다. 


“What the fuck!”


혼자 임에도 한국말 욕을 크게 하기엔 부끄러웠는지 크게 영어로 욕을 한번 내뱉고는 하나 TV를 켰다. 이 더러워진 기분을 위로하기 위해 기분 좋은 무언가가 필요하다. 종영이 되어야 몰아보는 드라마인데 웃음이 절로 나는 로맨틱 코미디를 보고 싶어 <신사의 품격>이라는 드라마를 플레이시켰다. 


‘그래, 품격이 좀 있어야지. 품격이.. 잘나간다고 다 신사냐?’ 하지만 드라마 속의 성공한  40대 캐릭터인 장동건도, 김민종도, 김수로도… 예쁘고 어린 여자들을 보면 침을 흘리는 한낱 유치한 고딩 남자들일뿐이었다. 


그나마 종강도 했고 회사도 안 나가는 날이라 다행이었다. 늦게까지 아주 푹~ 잤다. 늦게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서 무심한 듯 핸드폰을 확인했다. 아무 전화도, 아무 문자도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애가 새벽에 혼자 택시를 탔으면 다음날 예의상 문자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확 전화해 욕을 해주고 싶었지만 난 그의 전화번호를 알지 못한다. 초반에 그만 나의 회사 명함을 받았을 뿐. 나에게 있는 것은 갤러리 K의 명함뿐이었다. 


하루를 기다렸다. 어느 누구에게도 사과의 문자나 걱정의 안부 전화 따윈 오지 않았다. 심지어 선생님에게도. 


‘하긴 그렇게 실례를 했으니 나라도 무서워서 연락을 못 할 수도 있겠다.’


페이스북을 열어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선생님의 장문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나와 H의 만남이 은근히 담겨 있는, 그리고 춘천행 택시에서 핸드폰을 잊어버린 이야기가 담겨있는 안타까운 선생님의 글.


‘아, 전화기를 잃어버리셨으니 이젠 선생님에게 꼰지르기도, 선생님이 그들을 혼내주기도 당분간은 힘들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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