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에게 존중과 헌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
싱글의 삶을 지속하던 나에게 두 달 전.
동생부부에게는 쌍둥이 아이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그 무렵.
언니의 독일 지인의 딸아이가 한국에 온다며 부탁을 받아 2주 정도 돌봐주게 되었다.
누군가는 그냥 스챠 지나가듯 흘려보냈을 시간이고 경험이었겠지만. 나는 이 우연히 맞이하게 된 주변의 변화를 십분 활용해 보자. 그렇게 생각을 하고 주말마다 조카들을 돌보러 가는 일을 반복했고, 평일에는 독일 아이와 공생을 했다. 아마도 '가정'과 '육아' 등의 막연했던 개념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결과 나는 '결혼'을 좀 더 현실적으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먼저 그동안 나에게 오랜시간 공고해진 싱글의 삶이라는 울타리가 꽤 단단했다는 것을 고백하게 되었다.
사실 결혼하지 않은 이들에게 '결혼'은 '사랑의 결실' 혹은 '주변의 축복', ‘독립', '한 가정의 시작' 등 막연하게 여겨진다. 아니면 '결혼식'의 퍼레이드 장면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나부터가 그랬으니까.
그러나 결혼은 특정한 시점을 지칭하거나 인과 관계에 의한 결과로 표현할 수 없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결혼식 주례사에서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지 묻지 않는다. 결혼을 하는 두 사람에게 약속을 지킬 것인지 묻는다는 것을 기억해 낼 수 있다. 참 중요한 것을 그 동안 흘려 들었다.
'결혼'은 '약속을 지키는 일'이 핵심이다. 때문에 구두상으로 한 약속을 이행하는 효력을 발생시키기 위해 혼인신고라는 법적 절차를 가진다. 그래서 위의 말 중에는 결혼에 대해 정확히 표현한 말은 없다. 다만 그나마 그럴 듯한 말은 '한 가정의 시작'.
사랑을 하는 것보다 사랑을 지속할 것을 약속하는 일.
그것은 사실 인내를 약속하는 일이었음을.
그것이 사랑의 본질임을.
인내를 약속하는 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잘 될 때나 어려울 때나 서로 존중하고 아끼며 돌봐줄 것을 맹세하는 것.
서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두 사람이 이해타산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닌 존중과 헌신과 사랑의 의무를 지겠다는 약속. 그래서 신성한 약속이라고 한다. 사랑할 것을 약속하는 일이 인내를 약속하는 것과 유사한 말임을.
사랑의 즐거움만 바라봤던 가벼움과 사랑의 무지함과 이기심으로 지나쳤던 이들이 있다.
이렇게 지나가고 나서 이렇게 지켜보고 나서 깨닫는다.
감사한 일이다.
사랑의 약속
- 이해인
그분에게
네! 하는 순명의 순간부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구속입니다
그러나 한 곳에 속해 있어
모든 것에서 놓여나는
담백한 자유입니다
사랑의 약속은
지킬수록
단단해지는 보석입니다
충실할수록
아름답게 빛나는
무언의 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