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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일월 Apr 04. 2020

그 봄의 밤, 거리의 벚꽃

스타트업의 술잔은 쓰다


9년 전 SI 회사를 운영하던 친구의 눈물만 술반이었던 넋두리가 가끔 기억난다.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주먹을 쥐고 테이블을 두들기던 모습은 선명하다. 같이 앉은 스타트업 대표의 웃음 반 술반을 채우며, 다 잊자고 공중에 웃음을 흩뿌리던 것을 기억한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이 닮긴 술잔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다. 스타트업에 발을 들인 지 3-4달 만에 외형적으로는 좋아 보이는 것들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유명세 때문에 스타트업으로서의 실력을 제대로 쌓지 못했다. 그 후에 제대로 미끄러지길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처음의 큰 실패의 중요성을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




기억도 성장한다


그들이 부딪혔던 술잔. 지금은 알게 된 씁쓸한 웃음을 가지고 과거의 같은 장면으로 돌아가 다시 나의 잔을 부딪혀 본다. 같은 잔의 선명한 기억이지만 지금은 그 끝 맛이 꽤 쓰다.


아직도 고통이 익숙해지지 않아서일까. 성공하지 못할 것 같아 슬퍼서일까. 먹었던 밥만 먹으라는 주변 의 말에 왠지 모를 자괴감 때문일까. 세상으로 비집고 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을까 혹은 나가 보지 못하고 사라질까 두려워서일까.


(육체의 태어남은 부모로부터 받는다. 그러느 자아의 탄생은 세상 밖으로 존재를 드러냈을 때이다.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왔고 만나고 있고 앞으로도 만나게 되겠지만. 어느 순간 소식이 이어지지 않고 사라진 사람들도 있고. 한참 소식이 없다가 몇 년 만에 다시 들리기도 하고. 유명해져서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고.




대표들도 사람이다


대표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바라본다. 불면증, 대인기피증, 공황장애, 대상포진, 수전증, 틱 현상, 한숨, 긴장과 불안함 그리고 횡설수설까지.


반대로 어떤 대표들은 질투와 시기를 표현하며 경쟁자 욕과 나에게 동의를 구하거나 혹은 나를 무시하가나 비웃고 못살게 굴기도 한다.


대표는 혼자 걸어가야 한다. 무리 가운데 있지만 혼자이어야 한다. 누군가 붙잡아 줄 수 없고 이끌고 앞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대표들의 숫자만큼 다양한 스타일의 대표가 있다.





해마다 벚꽃은 만개한다


그때의 술잔이 기억나는 것은 그 후로 그 친구들이 겪었던 것을 나도 겪었고 겪고 있어서이겠지. 간혹 만나는 대표들에게서 보이고 느껴져서 선명학 기억하는 것이리라.


좋은 직장을 버렸다. 이후 스타트업 마케터를 버렸다. 전문가로 성장할수록 문제 해결을 근본부터 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힘들게 힘들게 사업가의 길을 선택했다.


금융과 스타트업 언저리 경계인으로, 미혼으로, 여자로, 보통의 학벌로, 업계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이런 길을 선택한 나의 생각을 가끔은 되돌리고 싶다. 익숙한 길을 선택하지 않은 내 길이 고통스러워서.


5년 전, 10년 전에는 걷는 길의 끝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걷는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안다. 가끔 눈물 잔을 채우지만 5년 후의 장면을 그린다. 이제까지의 고통을 거름으로 3년간 펼쳐간다.



https://youtu.be/hWYM5QEt0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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