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만큼 상처로 자란 유기견 솜이의 변화
고백하자면
반려견을 입양하기 전에 걱정이 태산 같았다. 지금 돌이켜 보니 사람이던 동물이던 누군가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대한 거부감의 발로 아니었을까.
받아들임을 거부하는 이유는 아버지다. 아버지는 타고난 능력자는 아니셨지만 가족 부양을 위해 아둥바둥 하다보니 능력자 비슷하게 되었다. 평생 가족 부양에 대한 부담을 굴레라 여긴 것이 이유라면 이유가 될까.
싱글의 이면
받아들임에 원인 모를 거부감이 오래되다 보니 이유도 모른 채 누군가를 나의 삶에 들어오는 자체를 부담으로 두었다. 그 결과 연애의 끝은 싱글 그리고 각종 소개팅 미팅의 결말도 결국 싱글이었다. 마치 싱글 회귀 본능인 것 마냥.
내 코가 석자인데 누굴 돌보겠냐는 자괴감 혹은 경제적 편의를 선택한 마음. 어쩌면 나는 괜찮은 싱글의 추구와 동시에 외로움과 손잡고 2인 1조 달리기를 하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싱글이 좋다 신글이 편하다는 말은 어쩌면 누군가를 부양(책임과 의무 등)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난다는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편협할 수 있는 행복
혼자의 삶으로써 느슨한 관계나 약간의 거리가 있는 관계를 통해 일시적 외로움을 해소하며 사는 것이 효율적일 수는 있다. 그러나 솜이를 입양하면서 가족을 구성하는 일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받아들인다는 건 애정을 키우는 일
어릴 적 마당에서 강아지를 키우던 좋은 기억과 더불어 버려지는 유기견의 생명이 안타까운 마음 너머 오랫동안 손 잡고 데리고 다닌 외로움이 여전히 있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연히 만난 유기견 솜이.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스트레스에 유기견 입양으로 과도한 정성은 두 배의 스트레스였다.
덩치가 커서 힘도 들고 다루기도 어려웠지만 아픈 데는 이상이 없는지 매일 돌보고 치료하고 약을 먹이고 자료를 찾아보고 체크를 하고.. 해보지 않은 다른 종류의 경험으로 회의도 일었지만 신기하게 스트레스와 걱정은 애정으로 바뀌어 갔다.
다른 반려 동물을 봐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내가 다른 반려 동물을 보면서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되었고. 털이 묻을까 가까지 하지 않았는데 냥이가 내게 와서 꾹꾹이를 하던, 만져달라고 툭툭 치던 모두가 반가웠다.
덩치만 커다랗게 성장한 골든리트리버 유기견 솜이를 보듬다 보니 어느새 나를 보듬고 내 주변을 보듬고 있는 것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