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육아를 하다가 내 안에 내면 아이를 살펴야겠다는 생각이든 순간이 이었다. 요즘도 여전히 내 안에 작은 아이를 만날 때면 잘 안아주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내면 아이를 만났다.
가끔 나에게 감정 쓰레기를 퍼붓는 엄마, 나이가 들면서 어린아이 같이 챙김을 받고 싶은 엄마. 이런 엄마의 심리상태가 이해가 안 갔다. 그러다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내력이 궁금해졌다.
엄마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았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았을 엄마의 어린 시절... 엄마 어렸을 때 일찍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의 부재로 자식들을 키우기 힘든 상황 아니었을까. 엄마 또한 녹녹지 않은 어린 시절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학교를 다녀야 할 때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일을 했다고 한다.
우리 삼 남매가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가져오면 엄마는 학력란에 중졸이라고 적으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것도 거짓이었다. 국민학교 졸업이 엄마의 학력의 전부였다. 엄마는 그것을 부끄럽게 여겼고, 배우지 못해 살기가 더 힘들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살아가기 위해 엄마는 영어 알파벳을 공부하고,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며, 장애인을 돌보기 위해 장애인 활동 지원사 교육을 이수해 일하고 계신다. 어떤 일이든 마자 하지 않고 일하는 와중에도 조금 더 나은 일을 하기 위해 엄마가 애썼던 모습들이 지금은 보인다. 때론 식당에서, 목욕탕에서, 공장에서 일했던 엄마가 이제는 누군가를 도와주며 스스로 마음이 뿌듯한 일을 하고 계신다.
결혼해서도 넉넉지 못한 살림의 연속이었다. 아프신 시부모님 모시랴, 아이들 셋 돌보랴, 직장 다니랴 동분서주했을 우리 엄마. 그러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하고 있는 엄마. 책임감과 열정을 갖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살아내기까지 엄마의 마음속에서는 얼마나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을까. 육체적인 고통은 또 얼마나 컸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엄마를 많이 안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심한 말에 상처받기보단, 엄마의 삶을 이해하고, 엄마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아주며 엄마의 마음에 공감하는 내가 되길 바란다. 그러면서도 나도 나의 의사를 건강하게 잘 표현해 나가기를.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가 되기를 말이다.
내가 엄마에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잘 구분하고, 미리 결정해서 엄마에게 차분히 말할 수 있도록! 부정적인 이야기보다 긍정적인 이야기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해보자. 점점 더 엄마와의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믿어본다.
엄마는 단지, 엄마의 힘듦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단 한 사람이 필요한 것 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