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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홍 Jul 05. 2023

엄마아빠 곁에 살고 싶나요?

<세피아빛 초상, 이사벨 아옌데 / 민음사>

<세피아빛 초상, 이사벨 아옌데 / 민음사>

P.201 게다가 집안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데 익숙해서 매일 친척들을 보는 관습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엄격한 칠레 가문이라면 예외 없이 그 끔찍한 관습을 따랐다. 그러나 신타아고도 친척들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다.

Q. 엄마아빠 곁에 살고 싶나요?


CH시에 살고 싶지 않다. CH시에 시댁과 친정이 모두 있지만 거기에 산다고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물론 내가 거기에 살면 양가 어머님들에게 큰 도움을 받고 살겠지만, 그래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수시로 전화가 와서 불려 다닐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이래서 자식 키워나 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부모에게 돌봄을 받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너무 당연하게 여겨서 조금 부족하게 받은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 하고 있는가? 아니다. 아니면서 어렸을 때, 엄마가 이래서 저래서 해서 상처받았다고 이야기하는 나를 보면 참 한심스럽다. 물론 그때는 어린 아이였으니깐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럼에도 누구나 부모는 처음이고, 부모님의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도 분명히 있어야 하는 부분이다. 이걸 이제야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다.


암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부모님 곁에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주말에 가끔 걸려오는 전화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외식 또는 외출 중에 전화가 올 때가 제일 곤란한다. 게니 목에 무언 거 걸린 거 마냥.


이 타이밍에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는 "그렇게 밖에 나돌아 다니고, 나가서 사 먹고 그럼 돈은 언제 모으니!" 하는 잔소리가 딸려온다. 그 소리가 맞는 말이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그리고 죄송스러워진다. 엄마, 아빠는 맛있는 것도 안 사 먹고 아끼고 아껴 우리에게 베풀어주는데, 우리는 맨날 우리끼리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고, 좋은 곳에 나들이를 다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


지금도 이런데 곁에 산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때는 물론 모시고 같이 다니면 되는 일이지만, 아마 그때도 폭풍 잔소리가 날아올 것이다. 


다행인 건 엄마가 며느리를 본 뒤론 주말에 전화를 잘 안 하신다. 우리가 외출해도 잔소리는 자제하는 중인 것 같다. '며느리에게 못하는 소리 딸에게도 하지 말자!' 뭐 이런 것 같기도 하고, 며느리에게 말을 조심하면서 딸들의 입장도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아무튼 친인척뿐 아니라 부모님이랑 곁에 사는 건 이상하게 부담스럽다. 아무래도 또 혼자 책임감에 묶여 게니 피하는 현상은 아닌가 싶다. 옆에 있으면 엄마가 떡이라도 하나 더 줄텐데. 이긍. 아직도 나는 멀었다.


가끔은 아예 철이 안 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부모님을 대하고 싶다. 이상하게 게니 철든 척하면서 마음에 짐을 지우며 사는 내가 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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