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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홍 Feb 21. 2023

[자기 앞의 생] 병자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문학동네

자기 앞의 생은 모모와 로자 아줌마가 서로에게 의지를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로자 아줌마는 불법으로 성매매 여성들에게 돈을 받고 그녀들의 아이들을 키워주며 생계를 유지한다. 그 아이들 중 한 명이 모모다. 로자 아줌마에겐 너무나 특별했던 아이. 자기 아들처럼 키웠다. 그리고 모모 또한 로자 아줌마를 엄마처럼 사랑했다. 로자 아줌마의 죽음을 지켜보며, 로자 아줌마를 돌보는 모모.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자신과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다. 로자 아줌마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릴 적 병상에 계신 던 나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두려웠다. 그즈음 로자 아줌마는 보기에 딱할 정도로 몸이 안 좋았고 나는 조만간 그녀가 나를 혼자 남겨두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계속 떠오르는 그 생각 때문에 겁이 나서 가끔씩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곤 했다. (...)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어 그냥 거기에서 뭉개고 있었을 뿐이었다.
<출처 :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문학동네     

죽어가는 로자 아줌마. 그리고 그녀를 돌 볼 사람은 모모밖에 없다. 열 살 아이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 모모의 심정은 어떨까. 그럼에도 모모는 간절하게 로자 아줌마가 옆에 있어 주길 바라며, 불안해하는 로자 아줌마의 손을 꼭 잡아준다.     


우리는 그렇게 한 시간쯤 서로 손을 잡고 앉아 있었다. 그러자 로자 아줌마의 두려움이 조금 가라앉았다.
<출처 :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문학동네

모모는 로자 아줌마의 생의 끝에서 함께 손을 잡아준다. 그러나 나는 생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 오히려 나는 어린 시절의 불행에 대해 할아버지 탓을 했다. 할아버지가 아파서 우리 가족은 외식도 못하고, 여행도 못 간다고. 엄마랑 아빠가 할아버지, 할머니 짐까지 떠맡아 우리 삼 남매에게 관심을 쏟을 시간이 부족하다고. 경제적으로 힘든 것도 할아버지, 할머니 때문이고, 이로 인해서 엄마랑 아빠가 돈 없다고 싸우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을 했었다.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절대 어른을 모시고 살지 않겠다고 말이다. 모모를 보며 부족했던 나의 과거를 돌아본다.   

   

집 안에 병자가 있다는 것. 그게 어떤 것이지 나는 안다. 그 공기를 나는 안다.

할아버지는 내 7살 때, 오토바이 사고가 났다. 사고는 생각보다 컸고, 사고가 컸던 만큼 할아버지는 심하게 다치셨다. 어려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진료를 다 받고, 더 이상 손 쓸 수가 없어 집으로 모셨다. 왼쪽 몸이 모두 마비된 상태로 할아버지는 누워서 생활을 해야 했다. 그 생활을 내가 7살 때부터 대학생 3학년 22살이 될 때까지. 대략 15년이라는 시간이었다.     


환자가 있는 집에는 특유의 향이 난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세수부터 화장실 처리까지 할아버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목욕은 일 년에 몇 번 밖에 하지 못했다. 아빠가 혼자서 축 늘어져있는 할아버지를 목욕시키는 일은 힘들 뿐 아니라 아빠는 타지로 일을 하러 나가 계신 경우가 더 많았다. 인천에 있는 막내삼촌이 한 번씩 우리 집으로 와야 아빠랑 같이 할아버지 목욕을 시킬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는 병자의 냄새가 자욱하게 머물러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15년 동안 창문으로 밖에 세상을 바라보지 못한 할아버지가 안타깝고 가엽지, 그때 당시는 나에게 주어지는 일들이 싫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동시에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목소리. "정은아~~ 정은아" 심부름의 시작을 알리는 음이다.    

“다시 눕혀봐라. 살짝 돌려서. 그래, 그렇게. 베개도 다시 받쳐다오.”

“커피 좀 타 와라.”

“손톱 좀 깎아라.”

“세워서 앉혀다오.”

“콜라 좀 가지고 와라.” 등등...     


하루 종일 누워있는 할아버지에게는 간절할 일이었지만 어린 나에게는 귀찮은 일이었고, 냄새나는 그 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어떤 날은 고양이처럼 쥐 죽은 듯 살금살금 집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집에 아무도 없는 척.

     

중학교, 고등학교 가면서 할아버지 심부름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이른 아침에 학교를 가서, 가족들이 잠든 후에야 집에 돌아왔으니깐. 하지만 대학생이 된 후, 할아버지 심부름은 내 차지가 되었다. 언니는 직장인, 동생은 고등학생.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반년 정도쯤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 그쯤엔 할머니 류머티즘 관절염이 심해지셔 인천에 있는 큰 병원에 다니시느라 막내 삼촌네에서 지내는 중이었다. 엄마랑 아빠, 언니는 직장생활, 남동생은 고등학생. 그나마 시간이 제일 많았던 대학생 신분에 나는 공강 시간을 이용해 집에 와서 할아버지 식사를 챙겨드리고, 심부름을 하고 학교로 다시 수업을 받으러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사이에도 엄마가 아프거나, 동생이 아프면 챙겨야 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아마 언니도 옆에서 함께 했겠지만 언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아무래도 책임감을 강하게 느껴,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집에 편한 곳이 되지 못했다. 항상 불편한 자리, 도망치고 싶은 자리, 벗어나고 자리였다.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적도 많았고, 아침에 눈뜨면 친구 자취방으로 간 적도 있었다.     

로자 아줌마와 모모를 보며, 어린 시절 아픈 할아버지를 외면하고 싶었던 내 마음이 보였고, 할아버지의 외로움과 슬픔이 보였다. 내가 집에 가고 싶지 않았던 마음은 할아버지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이제야 조금을 알 것 같다.      


15년 동안 작은 창문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간 당신, 이제야 돌아봐서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그녀는 이제 숨을 쉬지 않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숨을 쉬지 않아도 그녀를 사랑했으니까. 나는 그녀 곁에 펴놓은 매트에 내 우산 아르튀르와 함께 누웠다. 그리고 아주 죽어버리도록 더 아프려고 애썼다.
<출처 :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문학동네>

그리고 자기 앞의 생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사랑해야 한다.

책을 덮으며 우리 가족도 분명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을 거라 굳게 믿고 싶어 진다. 그리고 앞으론 그 사랑을 표현하며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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