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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홍 Apr 19. 2024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전부일때가 있다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안도현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에 들어올 때가 있네


도꼬마리의 까실까실한 씨앗이라든가

내 겨드랑이에 슬쩍 닿는 민석이의 손가락이든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찾아와서 나를 갈아엎는

치통이라든지

귀틀집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라든가

수업 끝난 오후의 자장면 냄새 같은 거


내 몸에 들어와서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마구 양푼 같은 내 가슴을 긁어댈 때가 있네


사내도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네

고대광실 구름 같은 집이 아니라

구름 위에 실컷 웅크리고 있다가

때가 오면 천하를 때릴 천둥 번개 소리가 아니라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에 들어오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서러워져

소주 한잔 마시러 가네


소주,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이 저의 감옥인 줄도 모르고

내 몸에 들어와서

나를 뜨겁게 껴안을 때가 있네


<출처 : 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시집 (문학동네)>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에 들어와 흔들어 놨던 일주일.

아직 여파가 존재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해본다.

사실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

그리고 이미 정해진 결론이다.

내가 마음 먹기 달린 것뿐. 

정해져 있다는 자체에 답답함이,

어쩔 수 없다는 말의 밧줄이 싫을 뿐이다.

어쩔 수 없는 건 없다는 말을 외면하고 싶다. 

그건 나에게 단지 밧줄의 길이가 조금 넓어졌다는 의미 말고는 없는 것 같아서.

앞으로 보낼 시간 속에서 내 능력을 키우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다. 

그리고 이번 일로 또 하나 깨달았다.

인정과 수용한다는 말의 무게를.

함부로 누군가에게 인정과 수용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섣부른 충고를 하지 못할 것 같다.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가끔은 전부가 되는 날,

그래서 뛸 듯이 기쁜 날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세상이 무너지는 날이 될 수도 있다.

그 전부가 되는 날,

내가 내 감정을 잘 만져주며 흘려보내길 오늘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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