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끼니를 때운 터라 뭘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서둘러 등교하며 미처 다 먹지 못하고 남긴 밥에 국을 말아먹었던가? 아니면 라면 반 쪽을 끓여 먹었나? 아무튼, 우리 집에서 미식가로 통하는 기하(가명)는 하교하자마자 엄마의 점심 메뉴를 무척 궁금해했다. 약속이 있어서 외출하고 돌아온 어느 날엔 바짝 다가와 코를 벌름거리고 알아맞히려 애를 썼다. 외식을 좋아하는 아이를 빼고 혼자만 너무 맛있게 먹은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대부분 남은 음식 처리로 근사한 점심 식사를 하는 경우는 손에 꼽히니 당당하게 생각하려 했지만 그날의 점심 메뉴는 얘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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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는 아빠가 회사에서는 뭘 드시는지 또는 회식으로 늦을 적엔 안주가 뭔지 궁금해했다. 삼겹살이나 장어구이등 본인이 좋아하는 먹거리가 나오면감탄사를 내뱉으며 군침을 삼키기도 했다. 두어 번의 질문엔 남편도 자세히 얘기해 주더니 몇 달째 매일 물어보니까 답을 하는 둥 마는 둥이다. 막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까지 매일 엄마, 아빠의 식사 메뉴를 물어보고 있다. 그런 동생을 보며 “네가 먹고 싶어서 그러지? 사 달라고 하는 거지?”라며 장난기 가득한 말로 놀리기 일쑤. 먹거리에 유난히 관심 많은 기하는 나중에 셰프가 되려 나보다.
월요일마다 있는 수업 후 깐깐한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한마디로 기분이 별로 인 날이었다.돌아와서는 점심도 먹지 않고 짐은 짐대로 내동댕이치고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유튭을 보고 있었다.
“띠띠띠 띠리링~”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미소를 지으며 하교하는 기하는 점심 메뉴대신 다른 것을 물어보았다.
“엄마,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웃긴 동영상으로 덮어보려 했던 불쾌한 감정이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왈칵 눈물이 날 뻔했다. 아이의 질문에 의기소침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안부를 물어봐준 아이를 꼭 껴안으며 뭘 먹었는지 궁금하지 않냐고 애써 화제를 돌렸다.
점심 메뉴도 기분을 묻든 것도 같은 질문인데요.
도덕시간에 배웠단다. 부모님께 매일 안부 인사를 하는 것이 효라고 말이다. 처음엔 겨우 인사하는 것이 왜 효일지 궁금했다고. 지금은 같이 살고 있어서 안부를 묻는 것이 쉬운 일 같아 보이지만 나중에 독립하게 되면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매일 안부를 묻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다. 지금부터 학교에 있는 동안 부모님이 식사를 잘하셨는지 별일 없으셨는지 묻는 습관을 들이길 당부를 하셨다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몇 달째 실천 중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 하고 하루에 몇 번 통화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스러웠다. 언제 통화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지며 어떤 변명도 떠오르지 않았다.아이와 마주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간식을 준다는 핑계를 대며 황급히 주방으로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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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에 전화를 한다는 건 용건이 있다는 뜻이다. 김치가 떨어지던지, 급하게 아이들을 부탁해야 하던지 등등. 그런 딸이 급하게 전화기를 들었다. 울컥한 마음을 누르며 아무렇지 않은 척 엄마를 불렀다.
“엄마.”
“무슨 일 있어? 뭐 필요한 거 있니?”
필요할 때만 전화를 하면 이렇게 된다. 전화한 이유를 솔직하게 고백해야 할 타이밍이다. 용기를 내어본다. 홀로 조용히 효를 실천하고 있던 손자 때문에 찔렸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조용히 듣던 엄마가 다정한 목소리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