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9일째 입원했던 첫 번째 아기가 제법 묵직한 보스 베이비로 성장했을 무렵, 두 번째 아기가 입원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기는 다행히도 가지고 있는 선천성 질환이 전혀 없는 건강한 정상아였다. 다만 몸무게가 너무 작아 아기를 보호하고 있는 기관에서 수유가 힘들어 병원으로 입원 결정되었다.
주 수가 미달되어 태어난 게 아니었음에도 아기는 2킬로 초반대 몸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황달이 심했고 잘 울지 않았다. 신생아 아기치고 어찌나 울지를 않는지 수유 시간이 되어도 조용히 잠만 잘 뿐이었다. 또 구강 용적이 작아 신생아용 젖꼭지 중에서 가장 작은 걸 써도 분유를 얼마 먹질 못하기 일쑤였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몸무게가 너무 적으니 빠는 힘이 약했고, 그러다 보니 먹을 수 있는 분유량이 얼마 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아기가 힘이 없어 계속 잠만 자고 울 힘도 없이 조용히 눈만 뜨고 있기 일쑤였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주치의도 일단은 어떻게든 몸무게를 늘리는 게 이 아기의 1번 목표라고 했다.
우리는 가장 얇은 비위관을 삽입하기로 했다. 아기가 제 입으로 분유를 못 먹는다고 그만큼만 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기가 입으로 먹는 분유량은 정말 말도 못 하게 소량이었고 먹는 양이 없어 배변조차도 거의 하지 않았다. 비위관으로 제때 정량의 분유를 먹이길 며칠째, 아기의 몸무게가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며 눈도 눈꼬리까지 온전히 뜰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입원 했을 때보다 볼살도 붙어 제법 사람다운 모습이 되었다. 체중이 늘고 정량의 분유를 제때 먹으면서 아기가 똥 같은 똥을 싸게 되었을 때 우리는 아기를 향해 박수를 쳐주었다.
아기의 몸무게가 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스스로 울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전에는 수유 시간이 되어도 울 힘이 없어 자고 있거나, 가만히 눈만 뜨고 분유 보기를 돌같이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소리 내어 우는 날이 많아졌다. 이때부터 비위관이 있어도 간헐적으로 젖병수유를 시도하곤 했는데 입원 초반보다 제법 먹는 양이 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기의 체중이 늘어간다는 건 곧 아기의 퇴원이 다가오고 있음을 시사했다.
아기는 기저질환이 없었다. 아기는 건강하게 클 것이 분명했다. 성장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는 자신의 어린 날도 궁금해하지 않을까 싶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쳤을 때, 아기에게 기록을 남겨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후 1개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신생아 시절을 함께 보낸 사이가 아니던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지금의 모습을 많이 남겨주고 싶었다. 우리 모두 아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최선을 다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남들 다 있는 어린 시절 사진 한 장이 없어 친구들을 부러워만 하고 있게 될까 봐 기죽지 말라고도 얘기해주고 싶었다. 병동 간호사들 핸드폰에서 아기 사진을 한두 장씩 모아서 인화를 했다. 병동에 머무른 시간이 길지 않아 사진이 많진 않아도 그럴듯하게 다양한 모습들을 담아 앨범을 만들 수 있었다.
아기의 퇴원 날짜가 잡혔다. 2킬로 초반이었던 몸무게는 1킬로 이상 부쩍 늘었다. 목소리는 우렁차졌고 요구하는 것도 많아졌다. 젖병을 물려주면 꿀떡꿀떡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게 빠는 힘도 많이 생겼다. 눈도 온전히 다 뜨고 황달도 많이 없어져서 제법 병동에 아기의 팬들이 생기던 차였는데.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아기의 짐은 단촐했다. 입원 시 입고 왔던 배냇저고리, 얼마 전 떨어진 제대, 당장 먹을 분유를 담아왔던 젖병 세 개, 그리고 간호사들의 핸드폰을 털어 만들어준 앨범 한 권.
아기의 무의식 속에 모두의 사랑이 심겨지길 바랐다. 병원 밖을 나가고 나면 아마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일은 없겠지만 그저 건강하고 바르게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성장하길 간곡히 기도해 보았다. 아기야, 우린 다시 만나지 말자. 너는 그저 너의 뿌리를 단단히 내리며 살아가는 데 온 힘을 다하렴. 너의 삶이 어떤 모양으로 그려질진 모르지만 나는 그저 멀리서 쑥쑥 크는 너의 모습을 그리며 간절히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