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의지

by 생각많은인프제

간호사로 일하며 죽음을 마주하는 일은 숙명과도 같다. 원치 않는다고 피할 수 없으며 마주 하고 나면 아주 오랫동안 잔상이 남는다. 어린이병원에서 일하며 마주한 죽음이 유달리 더 기억에 오래 남고 마음이 아팠던 건 이들이 자신들에게 다가온 죽음에 대해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병원의 환자들은 재활병동을 제외하면 대부분 중증 와상환자이다. 울음은 있으나 말은 없다. 신경학적 증상에 의한 불수의적 강직은 있으나 스스로 의지를 가지는 움직임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몸은 강직이 일어나는 방향으로 굳어지며 회복되지 않는 구축이 일어난다.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그들을 돌보나 이들에게 의지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궁금해지는 때가 많았다. 하루 종일, 아주 기나긴 시간 동안 같은 천정을 보며 누워 바라보는 세계는 어떠한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 지루하고 긴 시간을 사는 삶 속에 어떤 의지가 서려있는지도.

#1.

아주 마른 소년이 있었다. 너무 마르고 가벼워 우리는 소년을 대할 때 곱절로 조심해야 했다. 소년에겐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근육만 남아있는 상태였고 식이가 걸러지는 일은 없었으나 소년의 체중은 언제나 그대로였다.


다른 환자와 다름없이 소년 또한 중증 와상환자이기에 스스로 분비물을 뱉어내지 못했고 수시로 상태를 확인하며 흡인기로 분비물을 제거해야만 했다. 그러다 한 번씩 상태가 심각하게 안 좋아 지곤 했다. 삶이 끝나는 그 지점에서 소년과 우리는 힘겹게 사투를 벌였다. 날카롭게 울려대는 모니터의 알람소리, 어느 순간부터 측정되지 않는 그의 활력징후, 남아있는 근육의 힘을 긁어모아 헐떡 거리는 숨, 푸르스름해지다 보랏빛이다 못해 회색빛으로 변하는 전신 상태.


하지만 언제나 그 끝 지점에서 소년은 다시 돌아왔다. 잔뜩 드리웠던 죽음이 물러가고 그의 눈에 다시금 생기가 돌 때마다 삶의 끈을 놓지 못하는 소년의 의지를 생생하게 느꼈다. 말을 할 수 없고 몸을 움직일 순 없어도 그의 눈만은 유일한 표현의 수단이었다. 이후로도 여러 번 소년에겐 죽음이 드리웠고 삶이 끝나는 낭떠러지에서 위태롭게 흔들렸으나 소년은 언제나 불사조처럼 돌아왔다.


그러던 소년이 의지를 놓았다. 어느 날씨 좋은 주말이었다. 햇볕이 좋은 따뜻한 어느 날에 아주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소년은 의지를 내려놓았다. 그날은 평소와 다르게 지나치게 조용했다. 마치 이 순간을 남몰래 오래도록 준비해 온 사람처럼.


삶의 끝에서 돌아오는 그 길이 그간 너무 힘들었던 게 아니었을까?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의지를 놓아버릴 정도로 지쳤던 걸까?


소년이 좀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 같아 자책하는 마음에 한동안 마음이 괴로웠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은 떠나는 소년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는 것. 자신의 끝을 스스로 정한 이의 표정이었다는 것. 이제는 따스하고 평온한 곳에서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양껏 먹으며, 자유의지로 여기저기 여행하며 살길 조용히 바라보았다.

#2.

동글동글한 얼굴에 큰 눈을 가진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졸리면 잠투정이 심했다. 큰 눈 가득 눈물을 쏟아내다 잠들곤 했는데 눈을 완전히 다 감지도 못해 간호사들이 작은 수건으로 눈을 가려주곤 했다.

소녀의 상태는 아주 느리게 하지만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나빠지고 있었다. 반복적인 고열, 소화시키지 못하는 식이, x-ray에서 보이는 폐 상태도 점점 안 좋아졌다. 상태가 안 좋은 폐 주변으로 고름이 찼다. 주치의는 소녀가 남은 반쪽의 폐로 겨우 숨을 쉬고 있다고 했다. 소녀는 불규칙 적으로 헐떡거리며 보랏빛이 되었다 돌아왔는데 그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었고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죽음이었다. 주치의는 소녀가 속해있는 시설과, 아주 오래전 시설에 아이를 맡겼던 보호자에게도 상태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고 보호자는 그저 아이가 오랜 고통을 끝내고 편안해지길 바랐다.


하지만 소녀는 아주 조용히 본인의 의지로 죽음을 물리쳤다.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그 큰 눈을 굴리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끝끝내 소녀는 삶의 끝에서 돌아왔다. 혈액검사 수치가 점점 안정이 되어갔다. 주치의를 포함해 의국에 있는 의사 모두가 신기한 일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이 기적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고 어쩌면 의지가 가장 약했던 건 우리가 아니었을지 소녀 앞에서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이들의 의지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눈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오히려 한 수 배운다. 나는 얼마나 가벼운 마음으로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반성하며, 이들의 의지가 꺼지지 않도록 나 역시도 힘을 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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