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 추모의 집

by 생각많은인프제

희망이 떠났다. 두 돌이 되기 전 18개월을 향해갈 무렵이었다. 죽음은 아기에게 가혹하기만 했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아기는 체온계로는 체온이 측정되지 않을 정도로 몸이 차가워졌고, 온갖 겨울옷과 담요를 덮어도 체온이 오르질 못했다. 산소 독성의 위험이 있음에도 산소포화도가 오르질 않아 줄 수 있는 최고 농도의 산소를 며칠째 계속 공급했지만 아기는 계속 헐떡거리는 숨을 쉬었다. 아주 마지막에는 소변이 나오지 않았고 눈의 흰자위는 다 터졌다. 아기가 좀 더 힘을 내주길 바랐지만, 정해진 삶의 시간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희망은 무연고 행려 환자였다. 떠나가는 그날까지 이름자 앞에 붙은 ‘미상’을 떼지 못했다. 처음 올 때도, 떠나갈 때도 희망은 그 무엇으로도 정의되지 못한 삶이었다. 병원 지하 시신안치실에 누워있다 화장장으로 이동하고 추모의 집에 봉안되기까지 희망은 줄곧 홀로였다. 얼마나 무서웠을지, 무섭다고도 얘기하지 못한 채 홀로 모든 걸 이겨내야 했을 그 시간들이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무겁고 슬펐다. 아기의 발인일 오전에 간략한 추도미사가 열렸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렀다. 우리 모두 너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사랑을 알려주어 너무 고맙노라고, 하늘에서 내려올 땐 혼자였지만 돌아가는 길엔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워 함께 들려 보낸다고. 아기가 무사히 하늘에 되돌아갈 때까지 한동안 오래도록 목놓아 울었다.


희망이 죽고 두 달 뒤에 위령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희망이 봉안된 무연고 추모의 집이 열린다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어 방문을 신청했다. 지하철과 버스를 몇 번을 갈아타고 오랜 시간이 걸린 끝에 추모의 집에 도착했다. 무연고 추모의 집은 경기도 외곽 모처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 보행신호가 항상 있질 않아 보행자가 버튼을 눌러야 생기는 그런 곳이었다. 누구에게도 보이면 안 되는 시설인 것처럼. 여기에 들어온 이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 같아 그저 씁쓸하기만 했다.


신청자 이름을 얘기하고, 아기의 이름을 얘기하니 장례부터, 위령제까지 진행을 맡아주고 있는 기관 관계자분께서 희망의 마지막을 보여주었다. 무연고 사망자의 빈소에는 사진이 없는 경우가 대다순데 희망은 유일하게 사진이 걸려서 아기가 생전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기관 관계자가 말했다. 희망의 화장이 진행되던 날, 동료 선생님 한분이 희망의 사진을 가지고 빈소를 방문했었는데 이렇게 의미 있는 일이 되었다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아기는 곱게 화장되어 함에 들어있었다. 더 이상 아기를 직접 안아줄 수 없는 것이었다. 더 이상 아기가 좋아하는 목욕을 시켜줄 수 없다는 뜻이었고, 더는 아기와 낮과 해 질 녘의 노을과 바람과 지나가는 계절에 대해 얘기할 수 없음을 뜻했다. 아기에게 못해준 것만 생각났다. 아기는 봄에 태어났지만 생전 한 번도 꽃을 구경해 본 적이 없다. 병동 밖으로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이르게 갈 줄 알았으면 경위서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아기를 밖으로 데려나 가볼걸. 멀리는 나가지 못하더라도 병원 주변 한 바퀴만 돌아도 아기에게 꽃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 생각했지만 그저 위선이었던 같아 괴로웠고 못해준 것만 자꾸 생각나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 찼다.


추모의 집은 언제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문이 열리는 날은 일 년에 몇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 몇 번의 날을 간절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 겨울의 어느 날엔 유골함이 손이 시리게 차가워서 마음이 아팠고, 무더운 어느 날엔 또 너무 뜨거워 마음이 아팠다. 어느 봄날엔 생전 꽃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게 마음이 아파 꽃 스티커를 잔뜩 붙여주고 오기도 했다.


희망의 2주기 기일이 얼마 전이었다. 언제나 잊지 않겠노라 다짐하였지만 살다 보면 매우 자주 잊고, 문득 아주 짙은 그리움을 동반하며 생각난다. 아기가 건강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자랐을지, 만약 아기가 일찍 떠나지 않고 그저 오랫동안 병원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기도 한다. 아기는 돌아간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돌아간 곳에서는 재잘재잘 말도 하고, 제 발로 걸어 다니기도 하고, 원 없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아이들을 생각하며 언젠가부터 작은 다짐을 한다. 만약 나에게도 부모 될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 작고 소중한 생명에 대해 책임을 다하겠다고. 뿌리내리지 못하고 흩어지는 삶이 아닌 모두에게 사랑으로 기억되며 강한 뿌리를 가진 사람으로 키우겠다고.


2027년이 되면 아기의 유골은 보관 기한이 끝난다. 어딘가에 흩뿌려지고 나면 아기는 점점 나의 기억에서 옅어지리라. 하지만 이게 단순히 끝이 아님을 알고 있다. 어느 삶에선 가 아이들은 다시금 건강히 살아갈 것이고, 나 역시도 다짐을 지키며 나의 배를 빌어 나오는 사랑에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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