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날이 며칠째다. 더위가 지겹다. 아니, 이젠 원망스럽다. 이마로 땀이 가느다란 줄기처럼 흘러내리자, 숨까지 막히는 듯했다. 오늘이 아니면 못 버틸 것 같아, 헤어숍을 예약했다.
문을 열자 얇은 커튼이 흔들렸다.
“머리 많이 자랐네요.”
첫마디는 늘 머리카락으로 향했다. 직업의 눈은 속일 수 없다.
“이번에는 살짝 컬을 넣는 게 어때요?”
“좋아요.”
거울 속 치렁치렁한 머리를 못마땅해하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짧게 자르겠다는 결심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C컬보다 이게 더 잘 어울린다는 말 한마디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여름 내내 잘라내고 싶던 머리길이를 또 붙잡다니. 아마 그녀는 이미 내 마음을 읽고 있었던 모양이다.
시원한 홍차가 나왔다.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사 이야기, 휴가 이야기, 사고 후유증 이야기… 그리고 예약이 줄어 고민이라는 속마음까지. 북적이지 않는 살롱 한가운데서, 그녀가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제 문제인 것 같아요.”
누구보다 센스 있고 솜씨 좋은 그녀는, 요즘 자신이 슬럼프에 빠진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잘하는 걸 누구보다 알기에, 자꾸만 자신을 탓하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용기를 보태주고 싶었다. 예전엔 예약 잡기도 힘들었는데, 그날은 이상하리 만큼 한산했다.
“경기가 안 좋으니 그럴 수도 있죠. 원장님은 최고 중의 최고세요.”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그녀는 여전히 스스로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점집 이야기까지 꺼내는 걸 보니, 그녀가 단순히 기운을 잃은 게 아니라 깊은 불안 속에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평소 같으면 조용히 들어주는 것으로 충분했겠지만, 오늘 그녀가 털어놓는 말 앞에서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나 역시 숨겨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저… 고백할 게 있어요.”
“예? 무슨 말씀이세요?”
“사실은, 원장님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어요.”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악플은 아니시죠?”
“설마요.”
봄에 썼던 브런치 글을 꺼내 보였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의 설렘, 바쁜 와중에도 내 취향을 존중해 주던 그녀의 세심함, 그리고 책을 건네며 웃던 따뜻한 눈빛까지. 그날의 감동을 짧은 글에 담아 두었던 것이다.
그녀는 글을 읽고 얼굴이 환해졌다.
읽는 동안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더니, 금세 휴대폰을 들었다. 인정받았다는 기쁨이 가족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은 소식이 된 모양이다.
“엄마가 이런 선물 받았다고, 애들한테 링크 보냈어요.”
그 표정 앞에서 알았다. 손님의 말 한마디에 하루가 무겁기도, 가벼워지기도 한다는 걸. 아이들을 키우며 이 작은 숍을 지켜온 세월이 얼마나 버거웠는지, 오늘에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여기 정말 좋아요”라는 말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녀에게 브런치스토리는 낯선 공간이었을 것이다. 작가들이 글을 쓰고 독자와 나누는 플랫폼이라는 것도 잘 몰랐을 테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을 인정하는 글이 세상 어딘가에 남겨졌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감동한 듯했다.
나 역시 놀랐다. 대화를 나누다 마음이 열렸고, 결국 내 글을 꺼내 보였다. 그 순간, 말보다 글이 더 깊게 전해질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연재를 시작하고 매주 한 편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날짜를 맞추라 재촉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어느새 밀린 업무처럼 어깨를 눌렀다. 매일 노트북 앞에 앉아도 쉽게 써지지 않았고, 마음에 드는 글은 더 적었다. 발행 버튼을 누르는 순간은 시원했지만, 이내 스스로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반응까지 적으니 불안은 더 커졌다.
그랬던 내게 그녀의 “감사합니다”라는 인사가 묻고 있었다. 글이란 꼭 잘 써야만 가치가 있을까? 잘 쓴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제야 알았다. 내 글 한 편은 그녀에게 선물이 되었고, 그녀의 미소는 내게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 잘 쓰지 못해도, 더 나아지려 애써도, 그것은 내 글이었다. 글을 쓰는 이유, 잘 쓴다는 의미는 거창한 기교가 아니라 마음을 건네는 순간에 있었다. 그녀 덕분에, 그 단순한 진실을 새삼 떠올릴 수 있었다.